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 이어 통일전선부가 나서 한국 내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를 내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오는 25일로 예고된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 여부가 1차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내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 당국의 비난담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발표한 담화에서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남한 측의 조치를 요구하며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와 함께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를 언급했습니다.
이어 5일 밤엔 통일전선부에서 대변인 담화를 통해 김 제1부부장이 이와 관련한 첫 조치로 연락사무소의 ‘완전한 폐쇄’ 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의 이 같은 위협에 대해 “정부는 모든 남북 합의를 철저히 준수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북한과 협력을 계속해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폐쇄를 ‘첫 단계’로 공언한 것은 연락사무소가 지니는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성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 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오는 25일 한국전쟁 발발일 즈음해 탈북민 단체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와 관련한 한국 정부 조치를 주시하며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려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김정은 위원장 측에선 남북연락사무소의 효용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고 있는 거죠. 반면 문재인 정부는 남북연락사무소를 대북정책의 성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높게 보고 있는 거죠. 이 차이를 이용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단계에서 전단 살포가 이뤄지게 되면 연락사무소를 폐쇄하는 수순으로 갈 거라고 봅니다.”
북한은 또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서 남한에서 대북 전단 제재 법안이 채택돼 실행될 때까지 북한도 접경 지역에서 남한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남한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 중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9·19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남북 간 긴장감을 고조하는 조치에 나설 수 있고 접경 지역 군사 도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를 명분으로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해 말 천명한 `정면돌파전’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 사태와 인종차별 등 미국 내 문제로 북한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에서 우선 한국을 상대로 벼랑끝 전술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박원곤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분명히 한국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대북 제재 대오에서 이탈해서 민족끼리 공동사업을 하자는 건데 한국이 그 정도까지 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도 알기 때문에 저는 북한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계속 한-미 간 갈등, 탈동조화, 동맹 형해화 쪽으로 몰려는 의도가 더 크다고 봅니다.”
당분간 남북관계 냉각이 이어지겠지만 북한이 남북관계를 파탄으로까지 몰고 가려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나옵니다.
특히 접경 지역 내 비행금지구역, 훈련금지구역을 설정한 남북 군사합의는 북한에게 상당히 유리한 내용이기 때문에 북한이 섣불리 파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김진무 숙명여대 교수입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남북 군사합의의 상당 부분은 북한에 꽤 유리하게 합의가 돼 있다고 보는거죠. 그런데 북한이 굳이 그것을 깨버릴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깨버리면 그것을 다시 합의를 해야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북한이 왜 자기가 손해볼 일을 하겠느냐.”
박원곤 교수는 그러나 신종 코로나 사태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벼랑 끝 전술의 속도와 강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군사합의 파기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한편 북한은 8일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시 통화에 응하지 않아 한 때 북한이 연락사무소 기능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습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쯤 시도한 개시통화는 ‘불발’로 끝났으나 오후 5시쯤 이뤄진 마감통화는 평소대로 진행됐습니다.
2018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으로 개성에 설치된 남북연락사무소에서 통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처음입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시통화에 응하지 않은 데 대해 북한 측이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아직 북한의 의도를 예단하기는 힘들다”면서 “9일 정상적으로 소통이 되는지 봐야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통상 연락사무소는 특별한 현안이 없더라도 평일 오전 9시와 오후 5시 두 차례에 걸쳐 업무 개시와 마감 통화를 해왔습니다.
지난 1월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개성에 상주하던 남한 측 인력이 모두 복귀하면서 특별한 현안이 없더라도 평일에는 두 차례에 걸쳐 교신을 이어 온 겁니다.
한편 남북 간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은 이날 오전과 오후 통화가 모두 정상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