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가운데 사건을 일으킨 ‘자유조선’ 조직원 중 유일하게 체포된 크리스토퍼 안 씨의 변호인은 당시 사건이 탈북을 희망하는 대사관 관계자와의 협의 아래 이뤄진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안 씨에 대한 스페인 송환 심리는 오는 4월로 예정돼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크리스토퍼 안 씨의 변호인은 2년 전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이 북한 외교관 등과의 공모를 통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안 씨의 변호인단은 22일 미 연방법원에 제출한 기소 반박문건에서 이름이 가려진 익명의 인물들, 즉 대사관 관계자 등이 ‘자유조선’에 연락을 취했고 이들이 대사관 탈출을 요구한 게 이번 사건의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들 익명의 인물들은 북한 정권이 자신들의 배신 행위를 알게 될 경우 북한 내 친지 등이 보복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고, 이에 따라 자유조선 측에 허위 납치를 제안하고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대사관 관계자들의 이름이 모두 익명 처리됐지만, 재판부에는 이름이 가려지지 않은 문건이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호인단은 이번 문건에서 당시 상황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명시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질 당시 대사관 여성 직원 한 명이 돌연 창문으로 뛰어내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탈북을 요청했던 인물들이 공포에 휩싸이면서 마음을 바꾸게 됐다는 겁니다.
이후 변호인단은 안 씨 등이 대사관을 떠났다면서, 사건 과정에서 미국 법이 규정한 어떤 범죄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변호인 측 주장은 당시 습격 사건이 탈북을 희망하는 1인 이상의 북한대사관 직원 혹은 외교관의 협조 아래 이뤄졌고, 이에 따라 안 씨 등이 저지른 범죄 역시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겁니다.
당시 사건은 2019년 2월 22일 한국계 미국인과 한국 국적 탈북민 등이 주축이 된 반북단체인 자유조선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7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건 가담자 중 유일하게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안 씨는 현재 스페인 송환 여부를 결정짓는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밖에 이 단체를 이끌었던 에이드리언 홍 창 씨 등 다른 가담자들은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앞서 미 검찰은 2019년 4월 공개한 기소장에서 홍 창 씨와 안 씨 등이 북한대사관 직원 등을 결박하고 폭행을 가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검찰은 또 홍 창 씨 등이 북한대사관에서 컴퓨터 2대와 하드 드라이브 2개, 휴대폰 등을 탈취해 대사관 차량을 훔쳐 달아났다고 기소장에 적시했습니다.
그러나 안 씨의 변호인단은 이날 제출한 문건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반박한 겁니다.
변호인 측은 이번 사건의 배경에 북한대사관 직원의 공모가 있었다는 점 외에도, 스페인 당국의 수사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특히 스페인 당국의 수사가 북한대사관 내 9명의 북한 국적자들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면서, 이들이 자의적으로 진술을 했는지 여부에도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아울러 홍 창 씨가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 인사들과 교류한 점 등을 제시하며, 안 씨는 당시 사건이 미 정부의 협조 아래 이뤄진 일로 믿었다는 점도 이번 문건에 담았습니다.
사건을 담당한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법원은 22일까지 안 씨 변호인단이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반박하는 문건을 제출하도록 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이 같은 법원 명령에 따른 것으로, 검찰은 변호인 측의 이번 주장에 대한 추가 반박문건을 다음달 22일까지 제출해야 합니다.
이후 재판부는 오는 4월 9일 안 씨의 최종 송환 여부를 결정 짓는 심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