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와 미 의회의 관심이 뜸해진 양상을 보이고 있어 주목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 워싱턴 정가의 이런 기류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조은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뜸해진 양상은 지난 7일 하원의 국무부 예산안 심의 청문회에서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이날 각각 열린 외교위와 세출위 청문회는 미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의 기류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지만 북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증언에서도, 의원들의 질문에서도 북한 핵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이날 두 건의 청문회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언급은 북한인권특사 임명과 미-북 이산가족 상봉을 촉구하는 공화당 영 김, 민주당 그레이스 멩 의원의 발언과 이에 대한 블링컨 장관의 답변이 전부였습니다.
다음날인 8일 블링컨 장관이 출석한 상원 외교위와 세출위의 국무부 예산안 심의 청문회에서도 북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습니다.
이어 9일 상원 군사위의 국방예산안 심의 청문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기존의 평가와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정책 방향을 되풀이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의 청문회 서면답변이 전부였습니다.
세 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청문회는 국가안보 현안을 포괄적으로 점검하는 자리였지만 북 핵 문제에 대한 언급 한 번 없이 끝난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해 의회의 예산안 심의 청문회에서 미-북 비핵화 협상 교착 장기화 상태에서도 북한 핵 문제가 적어도 한 두 차례는 언급됐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의회의 이번 예산안 심의 청문회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대응과 동맹과의 협력 강화,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대외 현안들이 중점적으로 다뤄졌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특히 국무부 새 예산안은 중국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미국의 ‘힘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동맹과의 협력관계 회복, 국제기구에서의 활동 확대, 군사력과 억지력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녹취: 블링컨 장관] “But the common denominator is to approach…”
최근 의회뿐 아니라 국무부와 백악관의 성명이나 정례브리핑에서도 북한 관련 언급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북한 문제의 시급성을 인정하며 대북정책을 전면 검토하고 최근 대북특별대표도 임명했지만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에 집중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미-한 관계와 관련해서도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두 나라 관계가 글로벌 동맹관계로 진화하고 있다며,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한국과 미국은 모두 혁신을 기반으로 한 나라”라며 “우리는 오늘날 직면한 도전에 맞서고 내일을 위해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바이든 대통령]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are…”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뜸해진 배경에 중국 문제가 압도적인 것 외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국내 경제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미온적인 태도를 주된 요인으로 분석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1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낮다기보다는 ‘불확실한 상태’(limbo)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반응을 ‘기다려 보겠다’(wait and see)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녹취: 맥스웰 선임연구원] “The current situation right now..”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협상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은 그렇게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블링컨 장관은 지난달 말 미-북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공은 북한 쪽에 있다”며“미국은 북한이 실제로 관여하기를 원하는지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해리 카지아니스 국익연구소 한국 담당 선임국장은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 핵 문제는 “뒷전도 아니고 더 이상 페이지(우선순위)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카지아니스 국장] “North Korea issue is not even on the backburner…”
카지아니스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협상에서 큰 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로 다루길 꺼려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 내부 사정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주요 도발 행위를 하거나 미국과의 관여에 적극성을 보이긴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데 공감했습니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 여파와 제재 등으로 인한 경제난 등 내부 상황을 관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대외 문제 보다 국내 상황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맥스웰 선임연구원] “His inward, internal focus is really the priority…”
카지아니스 국장도 현재 국내 상황이 매우 어려운 북한은 내부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미국의 관심을 끌 만한 행보를 보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북한은 지난달 31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실은 개인 명의 논평에서“많은 나라들이 바이든 행정부가 고안해 낸 '실용적 접근법'이니 '최대 유연성'이니 하는 대조선 정책 기조들이 한갓 권모술수에 불과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미국의 만남 제안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 뉴스 이조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