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대북제재, '인권 개선' 축으로도 확대 전망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기자회견을 했다.

유럽연합(EU)의 ‘세계인권제재 체제(Global Human Rights Sanction Regime)’채택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권 제재가 더 강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존 비핵화 관련 제재와 더불어 인권 제재도 구체화되는 상황인데요, 김영권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먼저, 유럽연합의 ‘세계인권제재 체제’ 채택이 북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기자) 앞서 말씀하신 대로 대북 제재가 비핵화와 인권, 쌍두마차로 형성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EU는 이번 ‘세계인권제제 체제’ 대상에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장소에 관계없이 심각한 인권 침해와 탄압, 학살, 반인도적 범죄 등을 핵심 제재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최종보고서에서 반인도적 범죄 발생 국가로 결론 내린 바 있습니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가 북한 정부 기관 및 당국자들에 의해 이뤄졌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개입과 제재,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권고한 것이죠.

진행자) 그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관여했거나 자금을 제공한 개인과 기관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탄압한 가해자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이 북한 내 인권 탄압과 관련해 가해자들에게 제재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7개국이 연대한, 단일 시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특히 유럽에는 북한 대사관이 9개에 달하고 미국과 달리 양측 교류도 비교적 활발하기 때문에 제재가 본격화되면 북한 정권에도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캐나다도 이번 유럽연합의 인권 제재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마그니츠키인권문책법’과 비슷한 인권제재를 시행하고 있고, 호주 의회도 정부에 비슷한 인권 제재를 채택하라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북한 내 인권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국제 대응을 촉구해 왔습니다.

진행자) ‘마그니츠키인권문책법’이 본보기가 됐다고 했는데, 이 법이 뭔가요?

기자) 전 세계 인권을 탄압하는 당국자와 기관, 부패한 관리들을 미국 정부가 직접 제재할 수 있도록 한 법입니다. 미국 의회가 지난 2016년에 채택했는데, 원조법은 2012년 러시아만을 겨냥해 채택한 마그니츠키법입니다. 러시아 변호사인 마그니츠키가 러시아 고위관리들이 연루된 수억 달러의 탈세 증거를 발견해 당국에 고발했다가 오히려 체포돼 감옥에서 구타를 당한 뒤 사망하자 미국이 제재법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이 법에 따라 러시아인 수십 명의 미국 내 자산동결과 입국 금지, 금융체제 배제 등의 제재를 가했습니다. 이후 2016년에 그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했고 이번 유럽연합의 ‘세계인권제재 체제’의 모델이 된 겁니다.

진행자)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북한에 대해 인권 제재를 부과했죠?

기자) 그렇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가 2014년 최종 보고서에서 인권 관련 대북 제재를 권고한 뒤 2016년 오바마 행정부 때 대북 인권 제재를 시작했습니다. 유엔 조사위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유엔 안보리는 반인도 범죄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자들을 겨냥한 제재를 채택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탄압한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 국제사회가 책임추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미국이 국내 대북제재강화법안 채택에 따라 먼저 움직인 것이죠.

진행자) 미국의 대북 인권 제재 현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기자) 미국의 인권 제재 대상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2인자로 불렸던 최룡해 등 실권자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미 정부는 지난 2016년에 ‘북한의 인권 유린과 검열 보고서’를 발표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조연준, 김경옥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포함해 지도부 15명과 8개 기관에 제재를 가했습니다. 이어 2017년에는 북한 주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선전선동부를 겨냥해 김여정 당시 부부장, 김원홍 당시 국가안전보위부장 등을 제재 목록에 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8년 말까지 총 4회에 걸쳐 개인 32명, 기관 13곳에 제재를 가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 2018년 12월 북한의 인권 유린과 관련해 특별지정 제재대상에 추가한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선전선동부장(왼쪽부터). 과거 북한 '로동신문'에 게재된 사진들.

진행자) 영국도 올해 처음으로 대북 인권 제재를 가했죠?”

기자) 네, 영국 정부는 지난 7월 인권 유린 독자 제재법인 ‘세계 인권제재 법규 2020’을 발표하면서 북한 국가보위성 7국과 교화국 등 2곳에 제재를 부과했습니다. 도미니크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영국의 첫 독자적인 인권 제재법으로 전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가해자들을 제재할 수 있게 됐다면서 북한의 악명높은 정치범수용소를 지적했습니다. “두 기관은 지난 50년간 수십만 명의 수감자가 끔찍하게 죽어 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비참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발생한 노예화, 고문, 살인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 겁니다.

진행자) 북한 당국은 대북 제재가 주민 등 민생을 더 악화시킨다고 반박해 왔는데, 어떤가요?

기자) 유럽연합은 이번 ‘세계인권제재 체제’ 관련 문답에서 “모든 제재는 일반 대중에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가해자만을 겨냥해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 자금과 경제 자원 활용을 금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겁니다. 영국 외교부도 앞서 VOA에, 대북 인권제재는 “주민들이 아닌 가해자들을 겨냥한 과학적 도구”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정부 역시 북한 주민들을 통제, 검열, 선전선동, 처벌하는 가해자와 기관에 초점을 맞춘 맞춤형 제재라고 밝혀 왔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앞서 최종보고서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표적 제재를 권고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감안해 일반 주민이나 경제 전체를 겨냥한 안보리 또는 양자 차원의 제재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왜 유럽연합이 이렇게 북한 인권과 관련해 다양한 압박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에 제출되는 북한인권결의안도 모두 유럽연합이 작성하거나 공동 작성하지 않았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유럽연합은 특히 미국이나 한국, 중국 등 옛 6자회담 참가국들처럼 북한 관련해 안보와도 직접적 연관이 없죠. 이에 대해 국제 인권 전문가들은 ‘규범세력(normative power)’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유럽연합의 가치이자 외교정책의 핵심 목표인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의 규범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전파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가져온다는 논리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북한에 대해서도 비판적 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대화하고 교류하면서도 핵과 인권 문제에 관해서 침묵하는 게 아니라 강하게 제기하는 겁니다.

진행자) 그럼 이번 ‘세계인권제재 체제’를 채택한 이유에 관해서는 어떻게 설명했나요?

기자) 유럽연합은 관련 문답집에서 세계 각지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학대가 일어나고 있지만, 가해자가 자주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통해 유럽연합의 기본 정책 가치인 “인간의 존엄과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치, 인권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는 게 세계인권제제 체제를 채택한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량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고문, 노예화, 성에 기반한 폭력, 강제 실종, 인신매매 같은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이를 종식하는 게 핵심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유럽연합이 나열한 인권 침해 사례들이 대부분 유엔과 국제사회가 지적해 온 북한 내 인권 문제들에 해당되는데요. 전망은 어떤가요?

기자) 제재라는 실질적인 조치를 통해 대북 인권 개선 압박이 더 거세질 전망입니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장은 앞서 VOA에, 최종보고서를 통해 북한 내 인권 유린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추궁과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권고했는데, 6년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서 우려를 나타낸 바 았습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유엔 안보리에서 과거 북한 인권 회의가 열렸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표적 제재나 책임추궁에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런 독자 인권제재법을 통해 직접 가해자들을 압박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란 관측입니다.

진행자) 하지만 미국의 전례를 보면 걸림돌도 있지 않을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대북협상 진전 여부에 따라 정부의 인권 정책도 영향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가령 미국은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한 뒤 해마다 발표하던 인권 제재를 작년부터 2년째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북한 인권 관련 공식 논의도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열리지 않았고 올해에도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유엔의 유럽연합 외교관들과 인권단체들은 인권을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연합은 지금까지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해 일관성을 유지해 왔고, 미국의 바이든 차기 행정부도 북한의 인권 개선에 관심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대북 인권 제재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진행자)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유럽연합의 새 ‘세계인권제재 체제’ 채택 배경과 북한에 미칠 영향에 관해 김영권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