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 3명 중 1명 폭력 경험..."북한도 전국적 교육과 강력한 법 집행 필요"

세계 여성 폭력 근절의 날을 맞아 22일 터키 앙카라에서 관련 집회가 열렸다.

유엔이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인 25일을 맞아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북한 여성들이 겪는 폭력과 차별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유엔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근절될 때 평화와 안정은 물론 국가 발전도 빠르게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60년 11월 25일,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에 맞서 저항운동을 하던 미라발(Mirabal) 집안의 세 자매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트루히요 정권의 비밀경찰이 세 자매를 체포해 곤봉으로 잔인하게 때려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했던 겁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의 거짓과 공포정치에 시달렸던 대중은 분노를 표출했고, 독재자 트루히요는 이듬해 암살됐습니다.

이후 미라발 세 자매의 저항과 희생은 전 세계 여성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1981년 남미 여성 운동가들은 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들의 사망일인 11월 25일을 세계 여성폭력추방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어 유엔도 1999년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 이를 공식 기념일로 지정한 뒤 해마다 여성 폭력을 근절하고 여권 신장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유엔이 정의하는 여성 폭력은 가정폭력과 성폭력, 인신매매, 아동 결혼을 포함한 강제결혼, 지속적인 괴롭힘 등 매우 다양합니다.

유엔은 홈페이지에서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이 평생에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경험하며, 남편 등 친밀한 동반자(파트너)에게 가장 빈번하게 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홈페이지] “1 in 3 women and girls experience physical or sexual violence in their lifetime, most frequently by an intimate partner.”

▶ 유엔 페이지 바로 가기

전 세계에서 2017년 기준으로 매일 평균 37명의 여성이 남편 등 가족에 의해 살해되고 있으며, 특히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지역일수록 가정 폭력 횟수가 잦다는 겁니다.

유엔은 특히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비율이 늘면서 가정 폭력이 급증했다며 팬데믹으로 인한 그늘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녹취: 유엔 캠페인 동영상] “Right now, many people are trapped. Trapped in their home with an abuser. This is the Shadow Pandemic.”

유엔은 전 세계적인 캠페인으로 적어도 155개 나라가 가정폭력에 대응한 법률, 140개 나라가 직장 내 성희롱 등에 대응한 법을 제정했다며, 그러나 이런 나라들이 항상 국제 기준과 권고대로 이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유엔과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로 북한을 꼽습니다.

미국에 난민자격으로 입국한 탈북 여성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북한은 1946년에 이미 ‘남녀평등에 관한 법령’을 제정 공포했고, 2001년에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가입했습니다. 또 2010년에는 여성권리보장법을 제정했으며 ‘여성은 나라의 꽃”으로 최고 대우를 받는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지난주 16년 연속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서 북한 여성들이 당하는 인권 침해와 폭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Violations of the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of women and girls, in particular, the creation of internal conditions that force women and girls to leave the country,”

결의는 북한 여성과 소녀들이 조국을 떠나 인신매매 등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하는 북한 내부 문제를 자세히 지적하며, 북한 내 “불평등한 취업 접근성과 차별법, 규제 등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등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사 레그너 유엔 여성기구 부총재도 앞서 VOA와의 인터뷰에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과 여러 보고서가 지적한 여성 폭력 관련 자료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북한 내 여성 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조했습니다.

[레그너 부총재] “We need to work with whichever tools are relevant. … but it’s very important to not leave the issue and contribute to impunity.”

여성 폭력 문제에서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2차 가해로, 가해자들이 처벌도 없이 빠져나갈 수 있게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북한 여성인권 전문가인 임순희 전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4일 VOA에, 북한 당국이 여성권리보장법 등으로 대외 이미지 개선을 시도했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가부장적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던 한국에선 정부의 정책 의지와 꾸준한 교육, 여성들의 저항운동으로 상황이 많이 개선됐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순희 전 연구위원] “(한국은) 국가적으로 정책적 추진과 지지가 있었고,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의식이 깨었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 그러면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세력화해서 저항하잖아요. 또 저항할 때 돕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특히 교육이 계속 이뤄졌죠. 그런데 북한은 그게 없잖아요. 여성 스스로 그것을 의식할 만큼의 교육이 없고. 그것을 국가적으로 정책적으로 지지해주지도 않았고. 말로만 했지 실제 생활에서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잖아요.”

특히 “여성을 대표한다는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도 여성을 돕는 게 아니라 당의 외곽단체로 여성을 오히려 옥죄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북한 여성들을 대변하거나 여성 권리의 의식을 깨울 대상이 없는 게 큰 문제란 겁니다.

전문가들은 유엔이 25일부터 세계 인권의 날인 12월 10일까지 16일 동안 모든 회원국에 여성 폭력 추방을 위한 캠페인 등 실질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며, 북한 당국도 전국적인 교육과 강력한 법 집행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한국 여성가족부는 이런 유엔의 권고에 따라 25일부터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선포하고 여성폭력 방지 유공자 표창, 지하철 등 대중교통 시설에 여성폭력 추방 홍보 동영상 송출, 토론회, 여성 폭력에 대한 선제 대응과 예방, 피해자 지원 노력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엔은 성폭력과 가정 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세계에서 가장 만연하고 지속적이며 파괴적인 인권 침해 가운데 하나라며, 이런 문제를 근절하고 여성 권리가 신장할 때 평화와 안정은 물론 국가 발전과 번영도 빠르게 이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