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외교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최근 인도태평양 역내 안보를 평가하는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최근의 미-중 신냉전 상황이 향후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대북 외교는 교착상태가 심화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김동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미-중 간 신냉전 망령 때문에 향후 대북외교에 상당 기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IISS 2020 아시아태평양 역내 안보평가 보고서] “All the while, the specter of a US-China cold war casts a lengthening shadow, one that seems destined to shape the future of diplomacy in relations to North Korea…much of the optimism that enveloped Korean Peninsula diplomacy at the start of 2019 has dissipated.”
IISS는 5일 연례보고서인 ‘2020년 아시아 태평양 역내 안보평가’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한반도 외교를 둘러싼 낙관적 전망이 대부분 소멸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대외관계가 6자회담 핵심당사국 정상들과의 일 대 일 관계에 치중해왔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선대인 김정일 시대의 전형적인 ‘분열과 정복’ 전략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미,한,중 정상과의 부지런한 개별적 관여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 간 내재적 상호관계 때문에 외교적으로는 교착국면에 빠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북-중 관계 복원, 한국 역할 무력화 직접 계기”
“시지핑 주석에게 한반도 중재자 역할 빼앗겨”
특히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관계 복원은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무력화시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미-북 정상간 직접 소통로가 구축된 뒤 남북대화 가치는 급격히 낮아졌고, 이후 비핵화 협상을 둘러싸고 미-북 관계가 소원해지자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조언을 구하고 경제적 원조를 호소하고 있는 상태라는 설명입니다.
IISS는 향후 대북 외교관계의 핵심이 될 미-중 관계가 신냉전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 대화 교착국면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대북 외교적 성과의 부재가 경제, 양성평등, 환경문제 등 국내적 도전 과제들과 맞물려 대통령 지지도 쇠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점이며, 남북 관계가 여전히 2018년과 같은 짧은 시기의 평화를 맞이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성사되더라도 한국이 아닌 미-북 사이에서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IISS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창한 한반도 중재자 역할은 시진핑 주석에게 뺏긴 상태라며, 북-중 관계가 지속적으로 심화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향후 미-중 관계에 달려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핵 최대 60기 보유 추정…매년 5기 이상 생산”
“미-중 경쟁 심화, 비핵화 공조에도 상당한 변수”
한편 보고서는 북한이 이미 20~6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플루토늄 기반 핵시설인 영변과 베일에 가린 우라늄 기반 시설들을 통해 매해 최소 5~6기의 무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통적으로 상호 이해에 기초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양국이 상당한 견해 차이를 극복하는데 궁극적으로 실패하고 전략적 경쟁 심화로 이어진다면, 북-중 관계 심화라는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보고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관계 악화의 주된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며, 어느 한 쪽이 정치, 경제 체계의 변화를 보이더라도 경쟁에 기초한 관계는 지속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역내 배치 가능성 현실화”
“새 INF조약 전망 회의적, 중국 미사일 95%가 폐기대상”
특히 지난해 미국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한 주된 이유는 체결 상대국인 러시아가 아닌 역내 군비 증강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INF조약 탈퇴에 따라 미국이 지상기반 중거리 미사일을 인도태평양전선에 배치할 수 있게 되면서 역내 동맹에 대한 중국의 협박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셈법이 반영됐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한국, 일본, 호주 등에 지상기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하고 보복을 시사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역내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 미국의 목적은 지상기반미사일 배치를 시사함으로써 INF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을 군비축소 협상장에 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중국이 비축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의 95%가 폐기대상이 된다며, 중국의 협상수락 여부가 의문시되며, 오히려 심화된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대중견제 핵심동맹은 한국, 일본, 호주…동맹불신론이 변수”
“북핵, 한반도 셈법 변화 야기…확장억지력 신뢰도 하락”
보고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세개의 축으로 한국, 일본, 호주를 꼽으면서도 방위비분담금 문제 등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불신 기조가 향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특히 미-한 동맹관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논쟁적 도전으로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대북 확장억지력 신뢰 하락 문제를 꼽았습니다.
보고서는 “미국의 한반도 확장억지력 셈법이 미 본토와 인도태평양 군 기지를 겨냥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할 수 있는 핵 투사 역량의 가차없는 추구로 인해 급변하게 됐다” 지적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반영된 비핵화 열망에서 벗어난 채 지속적인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과 일본의 정책 당국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미국의 방위공약 의지에 의문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습니다.
VOA뉴스 김동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