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원칙을 지키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미-중 간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 원칙을 지키려는 미군의 움직임이 새삼스런 게 아니라며 미-중 간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5일 말레이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남중국해에 있는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를 방문했습니다.
카터 장관의 이런 이례적인 움직임은 지난주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라센 호가 중국 인공섬의 12해리 안쪽 수역에 처음 진입하면서 미-중 사이에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이뤄진 겁니다.
카터 장관은 이번 방문이 지역안정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세력이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중국을 겨냥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항행의 자유를 구실로 남중국해 군사화를 강화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위협하는 도발 행위에 반대한다며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길이 3천 km, 너비 1천 km에 달하는 남중국해는 전세계 해상 교역량의 30%가 지나가는 요충 지역입니다. 게다가 풍부한 지하자원까지 매장돼 있어 역내 국가들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과 주변국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역에 매립공사를 강행하며 인공섬 조성을 계속하자 미국이 최근 대응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어떤 나라도 힘으로 일방적인 행사를 해서는 안되며 모든 분쟁은 국제법 준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습니다.
벤 로즈 미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지난 2일 워싱턴에서의 연설에서 “미국은 항행 자유의 원칙을 고수할 것”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로즈 부보좌관] “We will uphold the principle of freedom of navigation……”
로즈 부보좌관은 남중국해에는 미국의 이익이 있다며, 항행의 자유 보장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 지역에서 추가 행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 당국자들이 지적하는 항행의 자유 원칙은 중국이 비준한 유엔해양법협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협약은 자연섬의 12해리 안에 대해서는 해당국의 영유권을 인정하지만 사람이 살 수 없는 산호초나 이런 곳에 인위적으로 만든 시설에 대해서는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해 5월부터 베트남과 가까운 스프래틀리 섬의 여러 산호초에 매립공사로 인공섬을 만들고 비행기 활주로와 일부 군사시설까지 건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은 이미 1947년 지도에 중국 영토란 사실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베트남과 필리핀 등 주변국들은 1940년 대 이전에는 중국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언급한 적이 전혀 없다며, 중국이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은 17세기부터 스프래틀리 섬을 지배해 왔다며 이를 증명하는 역사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미국이 최근 ‘항행의 자유’ 원칙을 행동으로 옮기는 배경에는 2가지 목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즈 부보좌관] “One, so that you have a code of conduct between China and ASEAN, the Association of …”
아세안 국가들과 중국 간 긴장 고조를 피하고 영유권 분쟁을 다자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겁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국외교협회 (CFR)의 실라 스미스 선임연구원은 ‘VOA’에, 중국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미스 연구원] “That suggest they are not ready to peacefully resolve this dispute….”
중국이 일방적으로 분쟁 도서 지역을 점령하고 군사력을 남중국해 뿐아니라 동중국해와 인도양, 서태평양까지 힘으로 넓히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에 미 정부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항행의 자유’ 원칙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미 해군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수십 회에 걸쳐 영유권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나라들의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 활동을 해 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해양법 전문가인 존 올리버 미 조지타운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VOA’에 과거 냉전시절 미 해군은 소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흑해에 군함 2척을 보내 분쟁의 해법을 찾은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올리버 교수] “You may remember that February 1988 the United States sent two ships…”
1988년 미 해군은 소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함 2척을 소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에 보내 항행의 자유에 대한 시위를 했고 결국 이듬해 항행의 권리를 보장하는 ‘잭슨 홀’ 합의 (Jackson Hole Agreement)를 이끌어 냈다는 겁니다.
올리버 교수는 그러면서 중국 정부가 최근 미군의 남중국해 움직임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올리버 교수] “I think they are overreacting. I think they should…”
지난 8월 말 오바마 대통령이 기후변화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알라스카를 방문했을 때 중국 해군 함정 5척이 알라스카에서 가까운 베링해에서 작전활동을 펼쳤지만 미국은 별다른 경고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는 겁니다.
올리버 교수는 이는 미국이 국제법상 중국 함정들의 항로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라며, 중국이 미 이지스 구축함의 움직임에 대해 “도발” 이라고 주장하는 건 과도한 반응이라고 말했습니다.
올리버 교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중국의 일방적 태도로 볼 때 과거 미국과 소련이 합의했던 방식이나 국제재판소를 통해 해결하는 길이 가장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편 미군의 지속적인 남중국해 작전으로 인한 미-중 충돌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은 것으로 미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미-중 간 고위급 대화 채널이 계속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충돌 가능성은 적다는 겁니다.
미국외교협회의 실라 스미스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관계자들이 남중국해에서 미군이 작전 수위를 높일 것이란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미스 연구원] “I don’t think so. In fact, I was just in Beijing last….
스미스 연구원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미-중 간에 당장 해법이 찾아질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양국 고위급 대화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관리는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미 하와이의 민간단체인 동서연구소의 데니 로이 안보담당 연구원은 ‘VOA’에 미-중 충돌로 인한 인명 피해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미국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로이 연구원] “Any response at all on the part of the United States will anger the Chinese, of course, Any gestures beyond zero…”
로이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이 평소처럼 서로 오가며 대화로 긴장을 완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우발적 사고를 막기 위해 서로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