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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미국, '북한여행경보' 90일마다 갱신키로...새 제재법 따른 압박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건물. (자료사진)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건물. (자료사진)

미국 국무부는 앞으로 북한 여행경보를 3개월 마다 한번씩 갱신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 의회를 통과한 대북 제재 강화법에 따라, 반 년 넘게 걸렸던 경보 발령 시차를 대폭 줄이기로 한 겁니다.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주요 현안들을 살펴 보는 `심층취재,' 백성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국무부가 지난 11일 웹사이트에 올린 북한 여행경보는 6년 간 9차례 발표된 경보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의 한 관리는 최근 ‘VOA’에 북한 여행경보가 국무부의 ‘외교업무 매뉴얼 (Foreign Affairs Manual)’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지난 2월 발효된 ‘2016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 여행경보 갱신 단위를 ‘외교업무 매뉴얼’ 7권 56장에 명시된 6개월이 아니라 90일로 크게 단축했고, 앞으로도 계속 3개월에 한 번씩 갱신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이번 여행경보는 지난 5월 16일에 이어 87일 만에 새로 작성, 발표됐습니다. 국무부가 2010년 8월 27일 첫 북한 여행경보를 발령한 뒤 6개월에서 1년까지 시차를 뒀던 갱신 절차가 2~4배 빨라진 겁니다.

지난 2013년 11월 19일 5번째로 발표한 경보에서 북한 여행 삼가 대상을 “모든 미국인”으로 규정한 이래 이번에 갱신 속도마저 가속화한 배경에는 북한을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압박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깔려있습니다. 북한의 미국인 억류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핵 문제에 우선순위가 밀렸던 인권 카드를 적극 꺼내든 겁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 인권 압박을 외교적 지렛대 강화를 위한 사전 정지 노력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게리 세이모어] “The Obama administration has decided that further diplomacy with North Korea will not be productive unless the U.S. builds up more leverage, more pressure…”

대북 지렛대를 더 구축하기 전에 북한과 외교에 나서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판단 아래 경제와 인권 제재에 무게를 두는 것이며, 특히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COI)의 보고서 발간 이후 구체적 인권 유린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지적입니다.

미 정부 전직 관리들은 미국의 대북 기조가 인권 압박 쪽으로 옮겨가게 된 결정적 계기를 2012년 미-북 간 2.29 합의의 실패로 꼽습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의 설명입니다.

[녹취: 데이비드 스트로브] “With the failure of the ‘Leap Day Deal’ in 2012, I believe that the leadership of the U.S. government lost any remaining hope that the North Koreans under Kim Jong Un might be willing to do [de]nuclearize…”

북한의 핵, 미사일 동결과 미국의 경제 지원을 맞바꾸기로 했지만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미국은 김정은 체제 하에서의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접고 오랫동안 우려해왔던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는 설명입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4월 '2015 국가별 인권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4월 '2015 국가별 인권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실제로 미국 정부 내에서 고조돼 가던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우려는 북 핵 협상 논의의 교착과 COI 보고서 발표가 맞물린 2014년 2월 존 케리 국무장관의 발언과 함께 본격화됐습니다.

[녹취: 존 케리 국무장관] “Reports of people who have been executed summarily and fired at by artillery, fired at by anti-aircraft weapons…”

북한은 사악하며 대포나 122밀리미터 대공화기로 사람들을 흔적도 없이 제거하면서 주민들에게 이를 보도록 강요한다는 케리 장관의 지적은 이 때까지 미 고위 당국자에게서 나온 가장 구체적이고 수위 높은 인권 비판이었습니다.

북 핵 문제 해결에 매진했던 국무부의 대니얼 러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글린 데이비스 당시 대북정책 특별대표, 시드니 사일러 당시 6자회담 특사 모두 이 시기부터 공개 석상에서 북한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며 미국의 변화된 대북 압박 기류를 실감케 했습니다.

[녹취: 대니얼 러셀 차관보, 글린 데이비스 특별대표, 시드니 사일러 특사] “We are deeply troubled by the deplorable human rights violations taking place in North Korea today…”

극악한 인권 유린은 더 이상 설 땅이 없다면서, 핵 문제 뿐아니라 인권과 반인도 범죄 문제까지 중요한 대북 압박 수단이 될 것임을 예고한 겁니다.

인권 압박의 효과는 오히려 북한 당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격한 반응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북한은 인권 압박의 칼끝이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겨누자 2014년 9월 15년 만에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변호하는 등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장일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오른쪽)가 지난 2014년 10월 미국외교협회(CFR)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뒤 VOA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일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오른쪽)가 지난 2014년 10월 미국외교협회(CFR)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뒤 VOA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일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그 해 10월 20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인권 압박에 극도로 불쾌한 심경을 거듭 드러냈습니다.

[녹취: 장일훈 차석대사] “정치범 자체라는 말도 모르고, 정치범 수용소는 있을 필요도 없고 없다, 아예. 완전 조작입니다, 이거. 그래서 지금까지 다 절대적으로, 종합적으로 거부했는데 이제 와선 자꾸 우리 수뇌부 걸고 드는 데는 우리 진짜 참기 힘듭니다, 이거.”

인권 유린의 주범을 북한의 ‘최고 존엄’ 김정은으로 좁혀가는 미국의 전략이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오랜 우려에도 아랑곳 않던 북한을 움직이게 만든 기폭제가 됐음을 북한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지난 2005년 북한에 고통을 줬던 방코델타아시아 (BDA) 계좌 동결처럼 인권 문제가 김정은 정권의 치명적 약점이라는 방증으로도 비쳐졌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 공개 캠페인을 시작하며 마무리된 미국의 2014년 대북 인권 압박은 다음해에도 이어져 유엔주재 미국대사의 탈북자 면담, 북한에 의한 납치와 강제실종 문제 제기 등으로 더욱 구체화 됐습니다.

2015년 1월 발동된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조치로, 북한의 소니 영화사 해킹에 대한 대응 방안 속에 북한의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과 모종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포함시켰습니다.

지난 2월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에 따라 지난달 발표된 미국의 첫 대북 인권 제재는 그런 의미에서 지난 3년 가까이 추진된 본격적 북한인권 압박 노력의 완결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처음으로 제재 대상에 올려 인권 유린의 책임을 최고지도자에게 묻겠다는 미국 정부의 단호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더 나아가 오바마 행정부 임기 내 미-북 관계 개선 기대를 접고, 북한 주민과 정권을 완전히 분리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지 또한 드러냈습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그러나 미국이 외교를 포기한 게 아니라 효과적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인권 압박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게리 세이모어 전 조정관] “I think it reflects a broader U.S. strategy of increasing pressure on Pyongyang in order to eventually create conditions for effective diplomacy…”

다만 그런 목적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중이 아니라 다음 행정부 때를 내다본 포석으로 풀이했습니다.

미 전직 관리들은 미국 정부가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과 관련해, “정치적 수단”이 맞지만 이를 통해 북한인권을 개선시키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도엔 진정성이 담겼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스트로브] “It is using it as political tool for the reasons that I mentioned before; one is the U.S. government has always been concerned about human rights situation…”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수 십 년 동안 국무부에 몸담으며 북한인권에 대한 미국의 오랜 우려를 분명히 봐 왔다며,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인권 문제 제기를 보류할 장벽 또한 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더 나아가 인권 비판을 하지 않는다고 북 핵 문제 해결이 수월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라며, 미국 정부가 이제라도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가해지는 북한의 인권 유린을 문제 삼는 것은 신선한 변화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미첼 리스] “There’s no evidence if not criticizing North Korea on human rights will force North Korea or compel North Korea to be more cooperative on the nuclear issue…”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만간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북한 노동자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는 등 인권 압박 강도를 늦추지 않을 예정입니다.

북한인권 결의안이 유엔총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핵 위협 등 공세를 펼친 북한이 ‘최고 존엄’을 정조준한 미국의 인권 압박에 어떤 대응으로 맞설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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