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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대북경협 기대감 · 견고한 대북제재, 전망은?


지난 5월 공사가 진행 중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의 장면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5월 공사가 진행 중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의 장면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최근 남북,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 대북 투자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와 각국의 독자 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비핵화 달성까지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 러시아는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 녹취] "새로운 세계가 오늘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정, 신뢰, 선의가 있는 곳. 그 세계에 합류하십시오. 기회의 문들이 활짝 열릴 수 있는 곳. 전 세계의 투자, 그곳은 의학적 난관의 돌파. 풍성한 자원, 혁신적 기술, 새로운 발견이 있는 곳."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여줬다는 동영상.

대형 컨테이너 화물로 분주한 항구, 곧게 뻗은 고속도로와 철도,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 '세계 경제에 통합된 북한의 밝은 미래'를 그린 겁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지원과 경제 협력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대북 원조는 주로 한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이, 대북 투자는 미국민의 세금이 아닌 민간 기업이 할 거라는 원칙만 제시했습니다.

[녹취 : 폼페오 장관]“This will be Americans coming in -- private-sector Americans, not the U.S. taxpayer, private-sector Americans helping build the energy grid. They need enormous amounts of electricity in North Korea, to work with them to develop infrastructure.

가장 먼저 시동을 걸고 있는 나라는 한국. 21일 러시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을 제안했습니다.

[녹취: 문재인 한국 대통령]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할 것이며 러시아와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러시아와 남북 3각 경제협력은 철도·가스관·전력망 분야에서 이미 공동연구 등 기초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대기업과 경제 관련 단체들도 남북 경협에 대비한 기구를 만들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현실이 되려면 먼저 '제재 빗장'이 풀려야 합니다.

현재 대북 제재는 유엔 제재와 개별 국가의 독자 제재로 이뤄져 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본격화 된 2016년 이후 유엔이 채택한 제재 결의만 모두 6개.

북한 선박 입항 금지, 노동자 파견금지, 합작사업 금지, 석탄과 유류 수출 금지 등 강도를 더한 제재들이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가령 한국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은 북한노동자 파견을 금지한 2397호(2017년 12월), 대북합작사업 등을 금지한 2375호(2017년 9월)의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북한 지하자원 공동 개발과 같은 구상은 북한산 광물 수입을 금지한 2371(2017년 8월)에 묶여 있습니다.

또 지난 2010 천안함 폭침 이후 단행된 '5.24 조치'를 언제, 어떻게 해제할지도 한국 정부에겐 숙제입니다.

이런 제재 국면에서 한국이 착수할 수 있는 주요 남북경협 사업은 사실상 없다는 게 대체적 견해입니다.

물론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해 유엔 제재위원회에 부분적인 경협 재개 승인을 요청할 수는 있습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방한한 북한 인사에 대한 제재가 일시적으로 면제된 게 비슷한 경우입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북 정상회담 이후부터 제재 완화 또는 해제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러시아 외교부는 결의안에 상황 변화에 따른 '조정(modification)' 규정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 “We are certain that modification of the UN Security Council’s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can and must become one of the most important components of normalization in the region, the more so, since the corresponding resolutions repeatedly confirmed the Security Council’s readiness for such adjustments in accordance with the dynamics of the situation, The dynamics is obvious. It might provide considerable backing for a political and diplomatic settlement in the region of Northeast Asia."

또 이런 조치가 앞으로 진행될 북한과의 협상 분위기를 좋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제재 조정'을 검토할 상황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단으로 활동했던 윌리엄 뉴콤 전 미국 재무부 선임 경제자문관은 20일 VOA에 싱가포르 회담을 통해 긍정적 토대가 마련되긴 했지만, 현재 상황이 유엔 대북 결의 1718호(2006)에 내포된 제재 수정 요건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윌리엄 뉴콤 전 자문관] "It demanded that the DPRK halt these programs, return to the NPT, and allow IAEA inspections. The meeting in Singapore and other recent actions appear to some as offering grounds for optimism. I hope they are correct but view actions to date as insufficient for any measure of sanctions relief."

핵·탄도미사일·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중단, NPT(핵확산금지조약) 복귀,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용이 선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기존 결의를 수정하려면 별도의 결의안을 채택해야 하는데, 수정 시기와 범위 등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습니다.

결국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의지와 협상에 달렸습니다. 상임이사국 한 곳만 반대해도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뉴콤 전 자문관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이후에 제재를 해제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완화를 위한 결의를 추진해도 채택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유엔 제재와 달리 독자 제재는 해제 여부를 개별 국가들이 결정합니다.

미국은 현재 10여 개가 넘는 법률과 그에 따른 행정명령을 통해 북한을 촘촘하게 제재하고 있습니다.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테러지원, 인권, 자금세탁 심지어는 공산주의, 비시장경제 시스템이 제재 사유인 것도 있습니다.

이런 틀이 유지되는 한 북한 제품의 미국 수출, 미국 제품·기술 반출, 송금은 물론 북한의 국제 금융기구 가입도 어렵습니다.

가장 강력한 미국의 대북 제재법은 2016년 발효된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

대북 거래 금지는 물론 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도 제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도 담고 있습니다. 한국 등 다른 국가들이 북한과의 경협을 추진할 경우 이 법에 따라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이 법이 발효된 후 발동된 행정명령에 따른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특정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미국 화폐 위조와 자금세탁 중단, 유엔 결의 준수, 정치범 수용소 생활환경 개선 등과 관련해 북한이 '진전(progress)'를 보였다는 대통령의 판단이 필요하고, 또 대통령은 이를 의회에 증명해야 합니다.

나아가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또 다른 5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미 의회의 대북 제재법 입안을 도운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VOA에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북한의 경제특구에 투자하려 한다면 당장 의회에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 "If North Korea didn’t meet the conditions, everyone in Congress would agree it’s a terrible deal and they would not approve funds...For years Congress has said no funds shall be spent for aid unless North Korea does this or does that. There are a lot of conditions that Congress, there is no question that Congress can refuse to appropriate funds for certain things that it doesn’t want to..."

의회가 북한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북한과의 합의 내용에 반대한다면 예산 배정을 거부함으로써 북한 관련 사업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례로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에 따라 대북 원료 지원과 경수로 건설 예산을 요청했지만, 의회는 북한의 합의 준수 여부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거부한 바 있습니다.

때문에 당시엔 한국과 일본 측에 비용을 대도록 우회했지만, 지금은 북한 은행에 대한 외환거래 서비스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차도 어렵다고 스탠튼 변호사는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법에서 명시한 요건을 모두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완화나 해제를 원한다면 특별법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마저 의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전 차관보는 북한의 제재 해제와 관련해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도 매우 보수적인 접근을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공화당이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한 이란 핵 협정에 반대하며, 결국 파기까지 선언한 상황에서 북한에 유연한 자세를 취할 명분이 없다는 겁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유엔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 "Trump should make clear the differences between negotiable trade sanctions, such as U.N. measures that limit North Korean import of oil and export of coal (which can be relaxed in return for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from non-negotiable U.S. targeted financial measures, which are law enforcement measures defending the U.S. financial system."

북한이 비핵화에 진전을 보인다면 석유 수입과 석탄 수출 제한 등과 같은 유엔 제재는 협상이 가능하지만, 미국의 금융 체계를 보호하기 위한 독자적인 제재 조치는 법률이 규정한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전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폼페오 국무장관은 최근 미-북 정상회담 직후 한국과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된 뒤에 제재가 해제될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 개선이 진척되는 데 따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했다'고 주장하며 제재 해제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 러시아도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진행될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제재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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