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8년이 지났지만 6.25 납북피해 가족들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납북자 가족들이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을 찾아 추모 행사를 열었습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전해 드립니다.
“아버지에게 며느리를 만나게 해 드렸다.”
납북자 가족인 김호길 씨가 28일 국립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에서 'VOA'에 건넨 말입니다.
김호길 씨의 부친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한으로 끌려갈 당시 개성 지역 공무원이었습니다. 당시 11세였던 김 씨의 삶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늘 비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납북자기념관에 아버지의 이름을 포함한 납북자 4천777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공간이 생기면서 작게나마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납북 피해자의 며느리이자, 김호길 씨의 부인인 김옥응 씨입니다.
[녹취: 김옥응 씨] “직접 이름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하지요. 그 때 당시에 그냥 잡혀가셨다니까...”
'6.25 납북 희생자 기억의 날'이기도 한 28일,납북자 가족 약 350명은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위치한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기념관은 납북자들을 위로하고, 실추됐던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목적으로 지난해11월 문을 열었으며, 현재 한국 통일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6.25전쟁 당시 북한이 남침을 모의하고, 치밀한 납북 계획을 세운 정황들이 각종 시청각 자료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또 전시는 물론 전쟁 이후, 그리고 해외에서 북한이 저지른 각종 납북 사건들도 알아보기 쉽게 정리돼 있습니다.
그러나 납북자 가족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곳은 납북 희생자들의 이름을 벽면 가득 채운 추모공간과 납북자들의 유품이 전시된 공간입니다.
이종철 통일부 6.25 납북자기념관 팀장은 개관 이후 납북자 가족 1천362명을 포함해 2만8천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등 관람객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이종철 팀장] “우리 기념관 직원들은 늘어나는 방문객과 전시 납북 가족들의 편안한 관람과 효과적인 전시 성과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또한 전시 납북가족들의 편의를 위해...”
이날 'VOA'와 만난 납북자 가족들의 바람은 한결 같았습니다. 생사 여부를 알고 싶고, 돌아가셨다면 유해라도 모셔오고 싶다는 겁니다.
전쟁 당시 경찰 치안감이었던 아버지가 북한에 끌려갔다는 80세 오세영 씨입니다.
[녹취: 오세영 씨] “유해… 다 죽었으니까 이젠. 우리 아버지는 53살에 잡혀갈 때, 거의 지금 납북된 사람들은 다 죽고, 우리가 이제 말하는 건 걔네들이 어디 죽였다고 말해주면 유해나 찾는 방법 밖에 없어.”
납북자 가족들은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에 서운한 마음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오 씨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녹취: 오세영 씨] “아슬아슬한 남북관계 속에서 납북자 문제를 얘기를 하기에는 쟤들이 비위 상할까 절대 얘기 못합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언젠가 우리 정부에서 얘기를 해줘야 돼. 이북 관리들에게 너희들이 이런 짓을 했으니까 어디 파묻은 거나 얘기해 달라.”
6.25 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이날 열린 '기억의 날' 행사에서 “한반도의 참된 평화와 종전을 실현하려면 우선 자국민인 전쟁 납북피해 문제부터 바르게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미일 이사장] “지금 우리는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은 변함이 없습니다. 전쟁납북자 문제 해결 없는 한반도의 평화는 위장평화로 우리 피해 가족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이사장은 “납북피해 가족들이 북한과 대화에 나선 문재인 정부에 남북정상회담에서 전쟁납북자 문제를 의제화 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면서 “그러나 의제화는 고사하고 전쟁납북자라는 말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이사장은 북한이 저지른 민간인 납북은“전쟁범죄”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억의 날'인 이 날은 지난 1950년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한 날입니다. 납북자 가족들은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한 남측 경찰과 법조인,공무원 등 상당수가 이날 이후 공산당에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갔고, 대부분 학살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기억의 날'을 6월28일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피해자는 9만5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파주에서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