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을 담당하는 유엔 총회 1위원회가 북한 관련 결의 3건 등을 채택하며 사실상 마무리됐습니다. 올해 회의에서 북한은 핵 실험 중단 등을 부각시키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지만, 비핵화와 제재를 강조하는 일부 나라들의 강경한 태도에 부딪쳤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1위원회 회의에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북한 문제를 언급하면서 한반도 대화 분위기를 환영한다고 전제했습니다.
북한의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을 규탄하며 북한을 몰아세우기에 바빴던 지난해 회의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출발했습니다.
달라진 분위기는 지난해 북한을 ‘평양 정권’이라고 부르며 회의 때마다 설전을 벌였던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군축담당 대사의 발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녹취: 우드 대사] “This year we are meeting in the context of engagemen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imed at holding North Korea to its commitment to complete denuclearization.”
우드 대사는 지난달 30일 회의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약속 아래 미국과 북한이 만남을 갖고 있다며, 북한이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왔던 지난해와 상황이 달라졌음을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라는 점과 대북제재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북한이 아닌 러시아나 이란 등을 비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북한 역시 미국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미 대표의 발언에 반박을 하거나, 미국을 거칠게 비난하던 과거 태도와 크게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유럽 나라들은 다소 조심스러운 미국 대표의 접근과 달리 일제히 북한을 몰아세우는 장면을 자주 연출했습니다.
유럽 각국의 입장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즉 CVID를 이뤄야 하고, 그 전까진 제재도 지속돼야 한다는 촉구로 모아집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북한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영국 대표로 나선 에이든 리들 제네바주재 군축대사입니다.
[녹취: 리들 대사] “It is vital that the DPRK...”
미-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는 건 필수라는 겁니다.
이어 국제사회의 압박과 강력한 유엔 제재가 북한과의 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 리들 대사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를 밟기 전까진 제재는 엄격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날 회의에서 얀 후앙 프랑스 군축대사도 “북한 상황과 관련해 프랑스는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며 동일한 주장을 펼쳤고, 체코와 오스트리아, 터키, 포르투칼, 스페인, 네덜란드 등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겐 침묵했던 북한 측 대표는 ‘반박권(Right of reply)’을 활용해 연합된 대응에 나선 유럽 나라들의 주장을 일축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지난달 23일에는 북한과 프랑스가 반박권을 사용해 가며 설전을 벌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북한 외무성 소속의 강명철 국제기구 군축 국장이 프랑스의 주장에 반박권을 사용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프랑스 측 대표로 나선 후앙 대사도 반박권을 이용해 상반된 입장을 밝힌 겁니다.
당시 후앙 대사는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 개발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이 지적하지 않았던 북한의 생화학 무기까지 거론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신경화학무기로 살해된 사건까지 언급했습니다.
[녹취: 후앙 대사]
이에 대응하는 강 국장의 발언입니다.
[녹취: 강 국장] “Are you saying that the nuclear weapons...”
강 국장은 “핵 무기가 내 손에 있을 때만 안전하고, 다른 나라에 있을 땐 위험하고 위협적이냐는 말이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랑스도 북한의 좋은 사례를 따라 핵무기 없는 프랑스를 만드는 게 어떻겠냐’며 “그럴 의사가 없다면 프랑스 정권 대표는 조용히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3건의 결의가 무리 없이 채택된 점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압박이 종식된 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일 1위원회가 채택한 결의 L26호와 L54호, L64호는 모두 북한이 불법 핵 무기 프로그램 등을 끝낼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을 가장 많이 언급하고 구체적으로 다룬 결의 L54호는 찬성 160, 반대 4표, 기권 24표를 얻어 압도적인 지지 속에 통과됐습니다.
이 결의를 반대한 나라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시리아였습니다.
미국은 한국 등과 함께 ‘기권’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결의 L54호는 북한 문제와 함께 1945년 미국으로부터 핵 공격을 당했던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민감할 만한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을 ‘기권’의 배경으로 추론해 볼 수 있지만, 지난해 미국이 같은 결의에 ‘찬성’표를 던진 점으로 미뤄볼 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추정됩니다.
1위원회는 북한과 관련된 결의 3건을 포함한 24건의 결의를 제73차 유엔총회로 보낼 예정입니다. 이후 유엔총회는 절차를 거쳐 이들 결의들을 최종 채택하게 됩니다.
유엔총회 결의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유엔의 공식 기록으로 남겨진다는 점에서 많은 나라들이 자국과 관련된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 강명철 국장도 표결 직전 발언을 요청해 해당 결의들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 강명철 국장] “However the sponsors of this resolution...”
강 국장은 L26호를 예로 들며, 북한의 여러 개선 사안들과 관계없이 해당 결의의 발의국들이 대결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측은 유연한 자세로 발의국 중 한 곳과 만났지만, 이 발의국이 좁은 마음과 편견을 갖고 있어 철회를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L54호의 주요 발의국인 일본에 대해서도 ‘전범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는 대신 세계를 향한 야망을 품고 군국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