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주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북한에서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은 과연,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궁금하실 텐데요. 그래서 오늘은 안보 전문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백악관 출입기자를 거쳐, CNN에서 국가 안보 현안을 보도하고 있는 비비안 살라마 기자입니다. 지금 바로 이야기 듣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살라마) 네, 제 이름은 비비안 살라마(Vivian Salama)입니다. CNN 소속 국가안보 전문기자이고요. 그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를 했습니다. 그보다 앞서서는, NBC 방송의 정치부 기자였고요. 그전에는 AP통신에서 외교ㆍ안보 담당 기자와 이라크 지국장 등을 맡았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한 지는 20년 정도 됐습니다.
기자) 안보 전문기자이시니까, 이것부터 여쭐게요. 신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는 정책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란 핵 문제를 비롯해 더 급한 안보 현안이 많다는 거죠. 실제 그렇게 보십니까?
살라마)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 문제는 역대 어느 미국 행정부에서도 최우선 안보 현안으로 분류해왔어요. 바이든 행정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새 정부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의 주요 정책 과제에서 북한 문제가 1순위 집단에 들어가 있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결코 뒷순위로 미뤄서는 안 될 과제가 바로 북한인 거죠.
기자) 북한 문제가 어째서 그렇게 중요합니까?
살라마) 미군 병력 수십만 명이 아시아에 배치돼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실제적인 위협을 주는 게 북한의 핵 활동이에요. 물론 중국도 잠재적인 위협이긴 합니다만, 북한처럼 공개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군사적 적대감을 표시하거나, 도발 행위를 하진 않았습니다.
기자)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서, 북핵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살라마) 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역내 미국의 많은 동맹 국가들, 그러니까 일본, 한국, 필리핀을 비롯한 나라들이 있잖아요. 이 나라들과 미국이 상호방위 조약들로 엮인 상태입니다. 따라서, 동맹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를 꾸준히 추구했습니다. 새 정부에서도 이런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기자) 새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그 목표를 성취할지가 관건 아니겠습니까?
살라마) 정상 간 1대 1 담판, 그러니까,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겁니다.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이 점이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와 바이든 신임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의 가장 큰 차이인데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가 가시적으로 확인돼야 미-북 정상 회담이 가능하다는 원칙이 확고합니다. 따라서, 북한이 먼저 행동에 나서야 상황이 개선될 겁니다. 아마도 실무선에서 대화가 시작될 수 있겠지만, 거기서 성과가 없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결국 모든 게 북한에 달렸습니다.
기자) 살라마 기자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가죠. 안보 전문기자가 되신 계기는 뭔가요?
살라마) 기자 생활 초창기에 해외 특파원 활동만 13년간 했어요. 그동안 주재했던 나라가 6개국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내전 중인 중동 국가 아니면, 테러·분쟁이 잦은 남아시아 지역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제 안보 현안이 보도 활동의 중심에 자리 잡았죠. 실제로 전투 현장 한복판에 나가 종군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기자) 그럼 지금까지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은 뭔가요?
살라마) 고르기가 힘드네요. 좋았던 일이 너무 많아서요. 그런데, 나빴던 일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전쟁의 현장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목격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했더라도, 난민이 돼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사람도 수없이 봤고요. 정말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 참상은 언제까지나 제 가슴 속에 무겁게 남아 있을 거예요.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그게 제가 안보 전문기자로 일하는 목적의식이에요. 분쟁과 불안정을 세계에 알려서, 국제 사회의 대응을 촉구하고, 궁극적으로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는 겁니다.
기자) 좋았던 일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살라마) 가족 간에 생이별했던 난민들이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상봉하는 경우를 몇 번 지켜봤어요. 소식도 없고 생사도 몰랐던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현장 말입니다. 전쟁은 힘없는 민간인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모는데, 그 상황에서 가족과도 떨어지게 되면,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거든요. 그 아픔이 해소되는 광경을 목격했던 게, 기자 생활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기자) 안보 전문기자를 여성이 맡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그동안 여성이라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살라마) 어려운 점도 있었고, 쉬운 점도 있어요. 하하하. 그런데 그 어려운 점을 어려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요. 왜냐면 남성과 여성을 대우하는 데 격차(gap)가 있는 건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현실이니까요. 바꿔나가야 합니다. 언론계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진전은 있었습니다만, 더 개선해 나가야 해요.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여성 앵커와 여성 전문기자, 여성 분석가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기자) 본인의 경험을 통해 봤을 때, 특히 어떤 쪽에서 양성평등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살라마) 전쟁 현장에서 고통받는 민간인의 대다수는 여성이에요. 그런데 전장을 취재하는 기자는 모두 남성입니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도하다 보니까, 전세가 어떻게 바뀌는지, 누가 어느 지역을 장악했는지, 이런 것에만 중점을 둡니다. 민간인 피해 상황은 분쟁 보도에서 뒷전이에요. 그래서 제가 AP통신 이라크 지국장을 할 당시, 이런 보도 관행을 바꾸도록 했습니다. AP통신 기사는 다른 매체들이 전제하거나 참고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효과가 컸어요. 그때부터 미국 언론의 분쟁 보도에서 민간인 피해와 난민 상황에 관한 이야기 비중이 커졌습니다. 그전에는 전쟁의 표면에만 초점을 맞췄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전무했었어요.
기자) 여성으로서 분쟁 현장을 취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살라마) 네. 그렇게 말씀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여성이 분쟁 지역에서 보도하는 게 과연 어떤 경험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면서 ‘힘들었겠다’, ‘어떻게 버텼냐’, 걱정을 해주셔요. 제약이 컸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물론 그런 게 대부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성이라서 이점도 있었어요. 여성은 (전투원이 아니기 때문에) 분쟁 현장에서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취재 대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어요.
기자) 분쟁 취재에는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장점일 수 있는 거네요?
살라마) 네. 이점이 또 있는데요. 중동이나 이슬람권에서는 남성이, 가족 이외 여성에게 말을 걸 수 없는 곳들이 많아요. 율법 때문이죠. 저는 여성이니까 거기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민간인 분쟁 피해자와 난민 취재를 충실하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난민 피해가 크게 발생한 곳에서 저 혼자,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여성 피해자들과 인터뷰를 했던 적도 있었어요. 다른 외신에 소속된 남자 기자들은 취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살라마) 아…, 딱히 몇 점이다, 집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고요. 우리 언론이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게 제 판단입니다. ‘도전’이란 말은 뭐냐면, 물리적인 언론 탄압이 아니고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이전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과 공직자들이 언론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면서 일어난 일인데요. 앞으로 나아질 거라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언론의 신뢰가 높았던 적도 있고 낮았던 적도 있어요.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언론이 더 잘하면 대중을 폭넓게 포용할 수 있습니다.
기자) 물리적인 위협이 없는 미국에서는, 언론 자유의 수준은 매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말씀이군요?
살라마) 네. ‘언론 자유’에 대한 실제적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다녀본 중동, 이슬람권 국가들에선 아예 그런 게 없어요. 이집트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조금이라도 권력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언론인들이 줄기차게 잡혀들어가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던 이유 하나 만으로요. 크게 위험하고, 부당한 일이죠. 제가 미국 언론인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기자)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뭡니까?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 거라고 기대하세요?
살라마) 하하하, 10년 뒤라…. 제가 워낙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일과 생활의 균형(work-life balance)’이 좀 맞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10년 동안 더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특히 저처럼 외교·안보 전문기자나 정치 전문기자가 활동하는 워싱턴 D.C.에서는 언론 활동이 세계 어느 곳보다 중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더 높은 실력이 요구됩니다. 그 기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거기에 못 미치는 존재가 되지 않고,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 워싱턴에 있는 기자들이 더 높은 실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살라마) 미국 전체, 그리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들이 나오는 곳이 워싱턴이니까요. 그래서 워싱턴에서는 기자라는 직업이 정말 중요해요. 큰 뉴스를 정확하고도 신속하게 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저희에게 부여돼 있는 거죠. 또한 세계 최대 권력 기관인 백악관을 감시하고, 국무부를 감시하고, 미 연방 의회를 감시하는 일도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의 임무입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살라마)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사회 진보를 이뤄나가는 기회를 놓지 마세요. 제가 특파원으로 있었던 (이슬람권) 나라들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된 곳이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진전이 이뤄지고 있어요.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인데요. 여성 단독 여행 제한, 여성 운전 금지, 이런 것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차례로 풀리고 있어요. 이런 변화가 사우디 당국의 전향적 조치에 따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건 그게 아니에요. 현지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권리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성과입니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북한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언론 자유도 마찬가지예요. 노력해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비비안 살라마 CNN 국가안보 전문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