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대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국제사회와의 관여를 다시 고려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스티븐 비건 전 미 국무부 부장관이 말했습니다. 비건 전 부장관은 북한이 바이든 정부가 제안하는 ‘조건 없는 대화’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다시 관여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비건 전 부장관은 15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가 ‘북한의 사상과 경제정책’을 주제로 연 화상대담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대외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북한이 국제사회와 어떤 조건에서 다시 관여할 지를 최소한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비건 전 부장관] “The fact that N Korea is beginning to send external messages suggests to me that N Korea is at least contemplating the terms under which it will re-engage with the rest of the world... And the N Koreans’ recent actions including the reopening of a hotline with S Korea may in fact be intended to set in place, set in motion, a series of engagements that could potentially affect political outcomes in S Korea next year.”
비건 전 부장관은 북한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집착했던 것처럼 지금은 다가오는 한국 대통령 선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은 한국에 정치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일련의 남북 접촉들에 시동을 걸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비건 전 부장관은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것을 매우 환영한다며, 만일 미국이 아직 북한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면 조속히 창구를 열고 유지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비건 전 부장관은 지속적인 외교를 통해 미국과 북한이 진전을 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조건 없이 어디서든 북한과 만나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제안에 북한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비건 전 부장관] “I have to tell you my experience is the North Koreans hate that kind of open-ended suggestion. I remember one of my colleagues on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staff in the Bush administration came back frustrated from New York, having offered to the N Koreans unconditional negotiations and the N Korean ambassador accused him of putting conditions on the negotiation by making them unconditional.”
비건 전 부장관은 “북한은 그런 제한 없는 제안을 싫어한다”며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부시 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소속이었던 동료가 뉴욕에서 북한 대사를 만나 ‘조건 없는 협상’을 제안했더니 북한 대사가 “‘조건이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종전선언’ 패키지 일부로 추진 가능”... “비핵화 없이 제재 완화 없어”
비건 전 부장관은 미국이 해야 할 일은 북한과 함께 양측이 취할 수 있는 일련의 조치들을 조용히 추진하는 것이라며, 종전선언이 패키지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건 전 부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을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 전에 추진하는 방안에 동의하느냐’는 VOA의 질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 문제만 따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녹취: 비건 전 부장관] “As part of a sequence of steps or a combination of actions that each side could take to begin to build that momentum, I think it would play a very important role. But I do want to caveat, where I’m worried a little bit... my view is that the N Koreans will not be enticed or induced to coming to the table simply by throwing concessions at them.”
비건 전 부장관은 “추동력을 만들기 위해 양측이 할 수 있는 연속적인 조치들, 복합적인 조치들의 한 부분이라면 종전선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조금 우려하는 부분은 단순히 북한에게 양보를 해서 그들을 협상장으로 유인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비건 전 대표는 다만 종전선언은 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이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과 한국의 동맹에 대한 의지, 미한 안보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며,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비건 전 대표는 미국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지원, 재미 한인들과 북한 주민들의 이산가족 상봉, 미군 유해 발굴 등도 미북 간 선의를 이끌어 내고 추동력을 낼 수 있는 조치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이 원한다면 미국, 한국과 함께 충분히 탐색할 수 있는 주제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비핵화는 미국의 대북 외교에서 가장 큰 우려이며,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경제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비건 전 부장관은 강조했습니다.
[녹취: 비건 전 부장관] “But denuclearization remains the central concern of the U.S. in its diplomacy with N Korea. And the U.S. continues to insist that there will be no relief from economic sanctions until N Korea commits and begins a process of denuclearization. To do otherwise would in fact put the U.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 the position of subsidizing an ongoing nuclear weapons program in N Korea.”
비건 전 부장관은 비핵화와 제재 완화는 ‘동시에 병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개발에 도움을 주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정은 ‘세계은행’도 몰라” vs “북한, 국제금융에 큰 관심”
한편 비건 전 부장관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측은 북한에 제시할 ‘밝은 미래’, 경제 협력에 대한 상당한 준비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 원조 회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북한 가입을 위한 탐색적 조치 등 강력한 계획들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2018년 10월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비건 전 부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때 폼페오 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국제 경제에 더 폭넓게 관여할 가능성을 제안하며 ‘세계은행에 가입할 것을 고려해 봤느냐?’고 물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절대로 잊지 못할 답을 김 위원장이 했는데, 바로 ‘세계은행이 무엇이냐?’는 반문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비건 전 부장관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 힘들었던 것 같다며, 결국 ‘밝은 경제적 미래’라는 개념은 미국에게 매력적인 제안이었을 뿐 전체주의적 독재 왕조인 북한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윌리엄 뉴콤 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위원은 비건 전 부장관의 ‘세계은행’ 관련 일화에 대해 “김정은의 보좌관들이 잔뜩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전문 관료들은 실제로는 국제 금융에 대해 매우 수준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뉴콤 전 위원] “I suspect his briefers got an earful following that. But in general, my experience is that those N Koreans dealing with foreign exchange and trade are very sophisticated. They’ve learned how to evade international financial regulations to continue to pursue the income earning and spending in hard currency. They have learned to exploit SWIFT. Think about the Bangladesh bank heist. They’ve learned how to conduct major insurance fraud.”
뉴콤 전 위원은 자신의 경험상 북한에서 외환과 무역을 다루는 이들은 매우 수준이 높다며 “그들은 국제 금융 규제를 피하고, 경화로 수익을 창출하고 소비를 하며, 국제 은행 거래망 스위프트(SWIFT)를 악용하며, 방글라데시 은행을 탈취하고 대규모 보험 사기를 저질렀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도 이날 토론회에서 북한이 국제 금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한이 국제금융 시스템에 접근을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늘 국제금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러면서 자신들의 대외적인 전략 또는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데 많은 참고를 하고 있는 것이죠.”
임 교수는 제재 문제와 국제금융 문제가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에 북한이 특별히 금융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