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자체 기술로 개발해 21일 발사한 우주 발사체 ‘누리호’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과거 북한이 위성 발사를 했을 때 유엔 제재를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북한이 최근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이중기준’ 철회의 명분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21일 시험발사된 한국의 첫 국산 우주발사체 ‘누리호’는 당초 계획했던 대로 추진체와 페어링 등이 차례로 분리됐지만 인공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안착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한국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며 전 세계에서 6개 나라에 불과한, 1t 이상의 위성체를 쏘아 올릴 수 있는 발사체를 보유한 국가군으로의 진입에 성큼 다가섰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보다 앞서 지난 2012년과 2016년 광명성 3호와 4호 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를 쐈고 각각 궤도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은 당시 평화적 우주 이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결의를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제재를 결의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한국과 대조적인 평가를 받은 이유는 우주 개발이라는 북한의 명분은 허울뿐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개발이 진짜 목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우주발사체는 탑재물이 위성체, ICBM은 탄두란 차이만 있을 뿐 로켓추진체를 이용해 탑재물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린다는 기본원리는 같습니다.
한국의 로켓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의 우주발사체는 옛 소련의 ICBM 연료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고 말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춘근 명예연구위원] “옛날 소련이 ICBM에 쓰던 RD250이라고 있어요. 그 엔진을 직접 도입했거나 카피했거나 해서 거기에 적용했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연료체계가 그러니까 그건 바로 ICBM이거든요.”
누리호의 경우 등유를 연료로,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쓰는데 이는 발사 당일 준비에 8시간이 걸리고 연료 주입도 발사 2시간 전에 이뤄져야 해 군사적으로 이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북한의 발사체 연료는 같은 액체연료이긴 하지만 상온에서 보관이 쉽고 준비 시간도 짧은 하이드라진을, 그리고 산화제는 적연질산 또는 사산화이질소를 사용합니다.
한국은 우주 개발이라는 명분에 맞게 위성을 꾸준히 개발했지만 북한은 2016년 광명성 4호 발사 이후 한 번도 위성을 발사하지 않고 화성 14호와 15호 같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로 기술을 전용했습니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이창진 교수] “발사체를 개발하고 나서 뭘 했느냐 하면 그것과 굉장히 비슷한 엔진을 역설계를 했는데 그게 화성 미사일이에요. 그 화성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전 단계였다는 게 기술적으로 보면 맥락이 이어지더라고요.”
북한이 광명성을 발사할 당시 국제사회 제재를 받은 것은 앞서 2006년부터 지속했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2012년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기까지 했지만 한국은 핵 없는 한반도를 목표로 북한의 비핵화를 부단히 요구해 왔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은 아시다시피 2012년에 헌법에 아예 핵 보유국이라고 명시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말하는 핵 보유라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불법으로 이미 유엔 제재 결의안으로 여러 차례 통과되면서 확실하게 명시된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아무리 평화적 이용이라고 얘기해도 이것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고요."
북한은 지난달 한국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시험발사 성공을 계기로 자신들의 핵 무력 증강 활동을 정당한 주권 행위로 인정하라는 ‘이중기준’ 철폐를 미국과 한국에게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 최근 신형 SLBM을 시험발사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북한이 어떤 대응에 나설지 주목됩니다.
누리호는 비록 위성 궤도 안착엔 실패했지만 무게 1.5t에 달하는 위성을 싣고 고도 700km까지 올라간 데 비해 북한이 쏘아 올린 광명성 위성은 무게가 불과 100kg~200kg으로 추정됩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이중기준 문제 제기를 한층 본격화하면서 SLBM처럼 사실상의 장거리 미사일인 우주로켓 발사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이것을 활용해서 자신들의 ICBM 개발을 정당화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준비가 됐다면 북한이 위성 발사라고 하는 장거리 로켓 발사 시험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에 그 발사를 한다면 지금이 굉장히 적절한 시점이 되겠죠, 북한 입장에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SLBM과는 달리 장거리 로켓 기술은 북한이 이미 완성한 기술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예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설사 우주발사체라는 명분으로 시험발사를 한다고 해도 이는 대미관계에서 레드라인을 넘는 행동이라며, 이를 감행하기엔 북한 안팎의 사정이 녹록치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은 로켓 기술이 다 개발됐거든요. 그리고 우주발사체는 돈이 많이 들어요. 그러니까 지금 기술적으로 필요성도 없고 돈도 많이 들고 준비 상태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게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쏘면 이건 장거리 미사일로 간주하거든요, 유엔은요. 그러면 러시아와 중국도 당연히 추가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어요.”
한편 북한은 누리호 발사가 이뤄진 21일, 과거 광명성 4호 발사 성공 소식 등을 담은 기록영화 ‘사랑의 금방석’을 관영 ‘조선중앙TV’를 통해 재방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