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정권 10년 동안 처형이 지속됐지만, 국제사회의 감시와 압박을 피해 처형 장소를 옮기고 주민 동원도 축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형은 한국 등 외부 영상 시청·배포 혐의가 많았는데, 김정은 정권이 그만큼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5개국 출신 인권 운동가와 연구자들이 설립한 한국의 인권 조사 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15일 김정은 정권 10년 동안의 처형 형태를 분석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김정은 시기의 처형 매핑: 국제적 압력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지난 6년 동안 탈북민 683명을 인터뷰한 기록을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조사 결과 북한은 “김정은 체제 아래 국제 비판을 의식해 처형 소식이 외부세계로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혈안”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이 단체는 밝혔습니다.
또 정보 유출에 대한 통제가 쉬운 곳을 처형장소로 선택하는 전략적 변화도 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단체 이영환 대표는 15일 VOA에, “북한 최고지도자의 집권 10년을 평가하고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비교할 필요가 있어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국제사회의 감시와 압박이 북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파악했다”고 말했습니다.
양강도 혜산 지역을 집중 분석한 결과 처형이 과거처럼 시장이나 운동장 등 번잡 지역이 아닌 중국 접경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혜산비행장 활주로 주변, 개활지, 언덕과 산 등에서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국제사회의 압력, 특히 인권 압력, 비판, 감시, 기록 이런 것들에 굉장히 민감해졌다!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낸다기보다 이것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김정은 체제도 전보다 더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이번 조사의 중요한 결과였고요.”
공개처형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참관시켜 공포감을 불어넣는 게 김정일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최대한 가리고 숨기며 처형하는 변화를 보였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처형 관련 442건의 진술 기록, 암매장과 소각 등 시체 처리 장소 관련 30건의 진술을 기록했습니다. 또 처형 장소 진술 27건 가운데 공개처형은 23건이며 이중 총살 21건, 교수형 2건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공개처형에 부과된 혐의는 한국 영상 시청·배포 혐의 7건, 마약 관련 5건, 성매매 5건, 인신매매 4건, 살인 또는 살인미수 3건, 음란 행위 3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대표는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절도 등 경제 사범들에 대한 처형이 많았던 반면 김정은 시대에는 외부 정보 유입과 살포 혐의로 처형한 사례가 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김정은 시기는 이렇게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굉장히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상 시청, 남한과 관련된 정보 유포, 또는 소지한 사람들을 처형한 경우가 두드러지게 많이 보인다! 이것은 체제 불안감을 상당히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을 물질적, 정치적으로 통제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 사상의 변화, 외부 세계와 북한 사회를 비교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북한 밖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코로나-19 같은 경우는 다른 나라가 어떻게 극복하고 백신을 맞고 있는지를 주민들이 알아 북한 지도부의 조치와 비교해 비판 의식을 갖는 것을 김정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지적입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남한 영상이든 외국의 영상이든 이런 것을 본다고 처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사회가 북한 김정은 체제를 심각한 인권 유린 국가로 비판을 많이 하는 이유는 이렇게 음악을 듣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고 사람을 죽이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이 잘 이해하셨으면, 큰 죄가 안 되는 것들을 갖고 주민들을 옥죄고 처벌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정권이다…”
실제로 북한 지도부는 지난 1~2년 사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 등을 채택해 비사회주의 활동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대대적으로 강화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인간 개조론”까지 언급하며 주민들의 사상교양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위성사진을 통해 탈북민들의 증언에 관한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으며, 이런 정보수집과 분석 등 전 과정에 공간지리정보(GIS) 기술을 활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단체 박아영 연구원은 보도자료에서 “김정은 정권이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적 감시 강화에 더욱 신경 쓰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다만 신경 쓴다는 것이지 인권 상황의 개선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처형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비밀 처형이나 실내처형 같은 비공개 처형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대상 탈북민 가운데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을 탈출한 경우가 200명으로 29%, 대부분이 양강도와 함경도에 집중된 점을 볼 때 좀 더 포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 단체는 앞으로 비밀처형이나 실내처형 기록, 처형 결정과 집행 등에 국가기구와 개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는 명령·지휘체계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모두 북한 지도부의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추궁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