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이 종전선언 문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북한과의 협의로 상황이 진전될지 주목됩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견인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북한이 전제조건을 철회하고 협의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은 최근 “미국과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사실상 합의한 상태”라며 “북한과의 협의를 어떻게 진전시켜야 될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서 북한은 일련의 신속한,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지만 좀 더 구체적인 반응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합의된 문안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한국 정부가 대화 재개의 입구로서의 상징적 수준의 정치적 선언을 추진해 온 만큼 기존 정전체제에 법적 영향을 주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주한미군이나 유엔군사령부의 위상 그리고 미-한 연합훈련의 필요성을 놓고 북한에게 논란의 빌미를 줄 수 있는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수준에서 문안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미-한 간 정치적 선언 수준의 문안 합의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종전선언이 성사되기까지 어려운 과정은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제재 완화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이런 부분을 미국이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기 때문에 한-미 간에 문구 협의가 종료됐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북한의 반대나 중국의 입장 이런 것들이 모호해서 현실적으로 종전선언을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봐요.”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이기동 박사 등은 최근 발표한 종전선언 관련 보고서에서 종전선언 핵심 당사국인 미-한 간 합의가 이뤄진다면 결국 북한의 동의와 참여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미-한 간 문안 합의는 됐지만 핵심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의 입장차는 그대로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종전선언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고, 북한은 대북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종전선언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환경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박원곤 교수는 현재로선 북한을 종전선언 협의의 장으로 유인할만한 요소를 찾기 힘들다며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남북한이 만나게 될 경우 의제를 종전선언에 한정짓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의미없는 종전선언을 들으러 올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북한이 제일 관심 있어 하는 제재 해제와 관련된 것들, 그 내용들을 물론 미국이 협상을 시작해야 북한에 보다 정확한 얘기를 할 수 있긴 하겠지만 아주 큰 프레임 정도 측면에서의 얘기들은 한국이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게 있어야 그나마 북한이 좀 더 관심을 가질 여지가 있다라는 거죠.”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 중인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나올 북한의 내년도 대외정책 방향에 따라 종전선언이 탄력을 받을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9일 노동당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3일차 회의에서 대남·대미·국방 등 분야별 분과를 구성해 토의를 진행한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어 30일 4일차 회의에서 결정서 초안을 최종 심의한다고 밝힌 만큼 여기서 채택된 당의 대미·대남·국방 정책이 곧 발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자력갱생 기조 위에서 미국과 한국에 조건부 대화를 압박하는 기존 노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상황은 급격한 노선 변경이 있기가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그러니까 자력갱생으로 버티면서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즉 조건부 대화론을 제기하는 수준이 될 것 같고요. 오히려 첩첩산중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대남 대미 비난을 하면서 입장 변화를 더 촉구하는, 한-미가 입장을 바꾸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쪽에 방점을 더 둘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이 돼요.”
조 박사는 또 미국과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중국이 종전선언에 대한 참여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문안 조정 과정에서 미-중 갈등이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초 종전선언 주체를 미국과 남북한 3자 또는 중국을 포함한 4자로 제시한 만큼 경우에 따라선 북한만 설득하면 된다는 식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며 중국에겐 제약요인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