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마무리된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방력 강화와 대적투쟁 방침을 천명하며 대외정책에 있어 강경 기조를 확인했습니다. 북한은 또 12일엔 서해상으로 5발 가량의 방사포를 쏘는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10일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자위권은 곧 국권 수호 문제로, 국권 수호에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당의 강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무력과 국방연구 부문이 강행 추진해야 할 전투적 과업들을 제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오늘 국가의 안전환경은 매우 심각하며 주변정세는 더욱 극단하게 격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띠고 있다”며 “이같은 정세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목표 점령을 더욱 앞당길 것을 재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핵 무력을 언급하거나 미국이나 한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강경한 대미 대남 기조를 확인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국방력 강화의 목표를 앞당긴다 그 다음에 현 정세가 매우 엄혹하다는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에 핵이라는 얘기는 없었지만 결국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암시한 것으로 봐요. 그렇게 본다면 기존 입장에서 큰 변화는 없이 다시 말해서 국방력 강화를 통한 핵 무력 고도화 그리고 한편으로 대남 대미 압박 이 노선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표현으로 보여지고요.”
북한은 또 이번 회의 결론에서 “대적투쟁과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들과 전략 전술적 방향들이 천명됐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대적투쟁’의 대상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관례로 비춰볼 때 한국을 겨냥한 표현이라는 관측입니다.
북한이 한국을 염두에 두고 ‘대적투쟁’을 거론한 건 지난 2020년 6월 이후 꼭 2년 만입니다.
당시 김여정 당 부부장은 한국 내 일부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위협했습니다.
북한은 곧이어 남북 통신연락선 차단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강행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전원회의에서 대남 강경기조를 천명한 지 하루만인 12일 방사포를 발사했습니다.
지난 5일 평양 등 4곳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8발을 무더기 발사한 지 7일만에 또 다시 저강도 무력시위를 벌인 겁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12일 오전 8시7분께부터 11시3분께까지 북한의 방사포로 추정되는 수개의 항적을 포착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서해안 지역에서 서해상으로 방사포 5발 가량을 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사포 기종은 구경 300㎜ 미만으로, 유도기능이 없는 122㎜ 또는 240㎜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이 ‘대적투쟁’이라는 표현을 다시 쓰면서 이 같은 저강도 도발에 나선 것은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는 한국의 윤석열 새 정부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라는 분석입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동원해 연이어 미사일 도발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방사포 발사는 정치적 메시지 보다는 통상적인 훈련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방사포 같은 경우엔 고강도 도발은 분명히 아니죠. 그리고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KN-25 초대형 방사포도 아닌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게 전원회의 이후의 북한 도발의 신호로 볼 여지도 있고 아니면 통상 자신들이 계획된 차원에서의 훈련일 가능성도 있죠.”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강대강 정면 투쟁’ 원칙을천명하면서 국방력 강화 목표를 앞당기겠다고 밝힌 만큼 중장거리 미사일 등을 동원한 무력 도발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7차 핵실험 감행 여부에 대해서도 기술적인 준비는 마무리됐고, 김 위원장의 정치적 결단만 남겨 놓은 상태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상황이나 미-한의 전략자산 전개 등을 포함한 대북압박 강화 움직임, 하반기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될 당대회 등 고려 요인들이 있지만 전술핵무기 완성 등 핵 무력 고도화 차원에서라도 감행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입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장마철에 접어드니까 핵실험하기엔 좋지 않은 환경으로 보여지고요, 미국의 고강도 압박이 분명히 예상되는 상황이고 게다가 중국도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한 이상 핵 실험 시기는 좀 더 연기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대신에 지금 개발이 완료되지 못한 화성-17형 ICBM이라든지 일부 무기 체계들에 대해서 전원회의를 통해 개발을 독려한 것이 북한의 지금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한편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대미 전문가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외무상에, 그리고 대남통인 리선권을 당 통일전선부장에 임명했습니다.
최선희는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미-북 정상회담과 이듬해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핵심 역할을 한 북한의 손꼽히는 대미 협상 전문가입니다.
미-북 관계가 대립할 때 마다 전면에서 비난전을 펼쳤고 특히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직후 김 위원장의 생각을 대변해 대미 비난 인터뷰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북한 역사상 첫 여성 외무상이라는 점은 김 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리선권은 남북관계 화해 시절이던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한국측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발언하는 등 거친 언사로 한국에선 대남 강경파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외교경력이 전혀 없이 외무상을 맡아 온 리선권이 자신의 전공 분야인 대남 조직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최선희가 외무상 자리에 오른 것은 외교라인을 정상화한 조치라는 분석입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천명한 ‘강 대 강 정면승부전’에 맞춰 북한의 군사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와 비난, 미-한 동맹 강화 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각에선 대미 협상전문가이기도 한 최선희의 중용이 장기적으론 북한이완성된 핵 무력을 바탕으로 협상에 나서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입니다.
[녹취: 황일도 교수] “주어져 있던 실권과 그 사람들의 직함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맞춰서 앞으로 국면들을 대비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고요. 앞으로의 국면이라는 것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전술핵 개발 프로세스가 본인들이 완성됐다고 판단했을 때 그 다음 행보를 2018년처럼 협상국면으로 가져갈 지 아닌 지 등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간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리선권의 통일전선부장직 임명은 향후 7차 핵실험을 계기로 남북한 간의 대립이 더욱 격화될 것을 염두에 두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북한의 ‘강대강’ 공세적 대응을 위한 진용 정비 성격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