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이번 겨울 가스 수요를 15% 줄이는 방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습니다.
EU 회원국 에너지 관계 장관들은 26일 벨기엘 브뤼셀 본부에서 특별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결정한 뒤 성명을 내고 "구속력 있는 가스 수요 감축이 필요한 경우 EU 차원의 경보를 발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스 수요 감축을 일단 회원국 자율에 맡기되, 향후 강제성 있는 조치로 바꿀 수 있다는 예고입니다.
EU 순회 의장국인 체코 측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다가오는 겨울을 앞두고 장관들이 가스 수요를 줄이는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하면서 "불가능한 임무가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불가능한 임무'란, 가스 사용 감축을 놓고 EU 내부에서 회원국 간에 이견이 컸던 상황을 가리킵니다.
친러시아 정책을 펼치며 천연가스의 60% 이상을 러시아산에 의존하는 헝가리는 이번 결정에 반대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러시아가 공급량을 예년의 절반 넘게 감소시킨 현재는 회원국의 자발적 준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완전 공급 중단에 가까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후속 조치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비상사태'를 판단하는 기준은 회원국 과반수의 동의로 정하도록 이번에 합의했습니다.
소비 감축이 의무화되면 각 회원국이 배급제를 실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8개월동안 시행
27개 EU 회원국 장관들의 이번 합의는 다음달(8월)부터 내년 3월까지 8개월 동안 15% 감축하는 집행위원회 안을 승인한 것입니다.
이같은 결정은 '정치적인 합의'이고, 며칠 안에 유럽의회에서 공식 법제화될 예정입니다.
15%는 지난해까지 5년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실제 적용에서 각 회원국 사정에 맞게 상당한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 러시아 '에너지 무기화'에 대응
가스 수요 감축 결정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에 러시아가 가스 공급 축소로 맞서자, 여기에 다시 대응하는 것입니다.
EU 에너지 관계 장관들은 이날(26일)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의 목적은 에너지 공급을 무기로 삼는 러시아로 인한 가스 공급 차질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회원국 장관들의 합의 직후 환영 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가스 완전 차단 위협을 제압할 결정적 발걸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은 전날(25일) '노르트스트림 1' 가스관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27일부터 줄이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러시아는 지난 21일 노르트스트림 1 유지보수를 이유로 중단했던 가스 공급을 재개했지만 이전 공급량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공급량을 수용 가능 용량의 20%로 축소한 것입니다.
◼︎ 실효성 의문 제기도
하지만 여기에 맞서는 사용량 감축 결정은 회원국별 사정에 따라 자체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예외 조치를 뒀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아일랜드와 몰타 등 EU 가스망에 연결돼 있지 않은 나라들은 면제 대상이 됩니다. 화학과 철강 등 핵심 산업부문도 면제될 수 있습니다.
또한 천연가스를 이웃 나라에 팔고 있는 폴란드나 이미 상당한 소비 감소를 이룬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15%보다 낮은 감축 기준을 둘 수 있습니다.
EU 27개 회원국의 전체 가스 사용량 가운데 러시아산이 약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에너지원에서 가스가 점유하는 비중은 25~30% 정도입니다.
EU 대부분 회원국들은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과 러시아산 가스 공급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스 사용량을 5% 줄이는 데 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EU가 제재에 나서면서, 석탄과 석유에는 합의했으나 천연가스에는 합의도 못하고 소비도 줄이지 못하자 가스 공급 중단을 유럽 각국에 위협해왔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