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당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주도해온 과학자를 반역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러시아 매체들은 6일 당국이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의 이론·응용역학연구소 소속 알렉산드르 시프류크 박사를 모스크바로 압송,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프류크 박사는 러시아의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을 이끌어온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극초음속 상태를 시뮬레이션하는 풍동(wind tunnel) 실험실을 책임져왔습니다.
앞서 해당 연구소의 아나톨리 마슬로프 수석연구원이 극초음속 미사일 관련 국가 기밀 자료를 외부에 넘긴 혐의로 지난 6월 말 체포된 바 있습니다.
이번 시프류크 박사 체포도 해당 사안과 관련있는 것으로 현지 매체들은 해설하고 있습니다.
시프류크 박사는 올 여름들어 비슷한 혐의로 체포된 세번째 인물이고, 가장 고위급으로 꼽힙니다.
■ 차세대 무기
극초음속 미사일은 음속의 5배인 마하5 이상 속도로 대기권을 날아 전 세계 어디든 한 시간 안에 타격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항로 변경을 비롯한 조종이 가능하며 대기 중에서 낮은 궤도로 날아가다가 목표물을 빠르게 타격해 추적과 방어가 어렵습니다.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을 크게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미 3종을 실전에서 사용 중이거나 배치 단계인데, 극초음속 순항미사일(HCM)인 '킨잘'과 '치르콘', 그리고 초음속 활공체(HGV) 탑재형 미사일인 '아방가르드'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탄두 탑재 가능한 치르콘을 몇달 안에 러시아 해군이 호위함에 본격 배치해 실전에 사용할 것이라고 지난달 31일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치르콘의 능력에 관해 "세계 어느 곳에도 맞설만한 무기 체계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해상 선박이나 잠수함에 장착할 수 있는 치르콘은 최고 마하8(시속 약 9천792km)로 비행해, 기존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우크라이나 전장 실제 사용
러시아는 또 다른 극초음속 미사일인 '킨잘'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장 곳곳에서 수차례 사용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개전 약 한달째였던 지난 3월 18일, 핵탄두 탑재 가능한 극초음속 무기 Kh-47M2 '킨잘' 미사일을 발사해, 우크라이나 군사시설을 파괴했다고 다음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이튿날에는 "킨잘 미사일을 발사해 니콜라예프(므콜라이우) 지역의 코스텐티니우카 정착지 인근에 있는 군 연료·윤활유 저장소를 파괴했다"고 밝혔습니다.
■ 민간 지역도 피해
이어서 러시아군은 지난 5월 9일,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해 우크라이나 남서부 오데사 일대를 공습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 남부작전사령부는 당시 성명을 통해 "러시아군 Tu-22 전략 폭격기가 신형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을 발사해 건물 5개를 파괴했다"고 밝혔습니다.
발사된 미사일은 3발 이상이고, 오데사 시내 호텔과 쇼핑몰 등 민간 시설에 떨어진 것으로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습니다.
당시 오데사를 방문 중이던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에 일정을 중단하고, 긴급 대피했습니다.
■ 핵 공격 공공연히 언급
이에 관해 러시아 당국자들은 핵무기와 극초음속미사일 전력 보유 사실을 강조하고, 실전 사용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언급해왔습니다.
지난 5월, 드미트리 로고진 당시 러시아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사장은 "핵 전쟁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은 우리(러시아)에 의해 30분 안에 말살될 것"이라고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 자포리자 원전 미사일 공격
이런 가운데, 5일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에 미사일 공격이 감행됐습니다.
이 공격으로 원전 단지와 인근 지역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책임 공방을 벌였습니다.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시 당국자는 이날 "우크라이나군의 공습으로 (자포리자 원전의) 750kW 개방형 개폐 장치에 전기를 공급하는 2개의 송전선이 끊겼다"고 발표했습니다.
해당 당국자는 앞서 러시아군이 원전 지역 일대를 점령한 뒤 임명한 인사입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핵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군 부대가 원전 부지와 에네르호다르 시내에 3차례 포격을 가했다"며 "핵 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의 범죄 행위를 규탄할 것을 국제기구에 촉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을 공격 주체로 특정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점령자(러시아군)들이 유럽의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다"면서, "하루에 두 번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했다"고 밝혔습니다.
자포리자 원전과 주변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군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서 "이 곳은 우리 대륙에서 가장 큰 원전 시설"이라고 강조한 뒤 "이 시설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뻔뻔한 범죄이자 테러 행위"라고 덧붙였습니다.
미사일 공격 직후 원전 부지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방사능 누출은 감지되지 않았고, 인명 피해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
자포리자 원전은 유럽 최대 규모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9일 째였던 지난 3월 4일, 해당 시설을 접수했습니다.
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단지 내 포격으로 인한 섬광이 솟아오르고, 행정·관리동과 훈련용 시설 등에 화재가 발생해 원전 사고에 관한 우려가 컸습니다.
역대 최악의 사태로 평가되는 지난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와 같은 참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 2일, 러시아군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가 "완전히 통제 불능(out of control)"인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