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한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은 9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THAAD)와 관련한 이른바 ‘3불’이 중국과의 합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회담에서 갈등이 노출되진 않았지만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같은 전략도발 여부에 따라 ‘사드 3불’이 한중 관계에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을 방문한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사드 3불’이 중국과의 합의나 약속이 아니라는 점을 중국 측에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박 장관은 9일 칭다오에서 가진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자신이 한 이런 발언을 소개하면서 “사드 문제와 관련해 북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은 자위적 방어 수단이며 한국의 안보주권 사안임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드 3불’이란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THAAD) 배치와 운용과 관련해 한국은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미한일 군사동맹도 결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문재인 전임 정부 시기였던 2017년 10월 당시 남관표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와 협의에서 처음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 장관은 회담에서 “양측은 사드가 양국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종료된 후 사드 관련 논의 내용을 담은 별도의 자료를 통해 사드 문제에 대해 안보 우려를 중시하고 문제의 적절한 처리를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국제협력센터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첫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사드에 대해 양측이 일단 현상유지에 뜻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는 봉합 차원이지 여전히 한중 관계의 뇌관으로 남은 상태라고 분석했습니다.
박 센터장은 사드 문제가 한중 간 갈등 현안으로 다시 부상할지 여부는 북한의 전략도발 여부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녹취: 박병광 센터장] “한국의 주권 사항이고 또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문제가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만약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거나 또 다른 핵 미사일 고도화를 통해서 한국을 위협하거나 지역안보를 해치는 행위를 하면 한국 정부로선 사드 추가 배치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박진 장관은 또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한국 입장을 명확히 설명했다”며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대화로 복귀해 진정한 비핵화의 길을 걷도록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고 중국도 이에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이 현재 마련 중인 대북 협상 로드맵인 ‘담대한 계획'의 요지와 현재 준비 상황을 중국 측과 공유했습니다.
왕이 부장은 중국은 할 수 있는 건설적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며 평화 안정, 비핵화란 공동의 목표 의식을 갖고 있는 만큼 소통해 나가자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미북 관계에서 미국 측의 태도가 소극적이라는 기존 입장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도 북한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고 도발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번 장관 회담에서 중국과 외교와 안보 분야 전략적 소통을 위해 연내 개최하기로 합의한 ‘2+2’ 외교 국방 차관급 대화가 “그런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외교장관 회담의 중국 측 목표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이 미국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며 북한의 7차 핵실험은 그런 중국 전략에 불리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든지 큰 도발을 하면 한국의 대미 경사가 가속화되고 확고하게 될 테고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을 제어하고자 하는 시간을 상실할 수가 있거든요.”
박진 장관은 아울러 회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대화 이른바 ‘칩4’ 의 한국 참여 문제에 대해 ‘칩4’ 예비회담에 참석키로 결정한 사실을 통보했고, 전적으로 한국의 국익에 기초해 판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 장관은 한국은 어느 특정국을 배제할 의도가 전혀 없고 한중간 밀접하게 연결된 경제통상구조를 감안할 때 오히려 한국이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왕이 부장은 국익에 기초해서 판단할 것이라는 한국의 설명을 경청했다며 앞으로도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이 적절하게 판단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칩4’는 아직 정체성이 불확실한 논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당장 한중 간 현안은 아니라면서도 잠재적 갈등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중국은 (한국이) 칩4에 들어가든 아니든 자기들이 고립되지 않는 형태의 협력이면 무관하다 이런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아직 칩4가 시작이 안됐기 때문에 중국이 일단 상황을 보는 거고요. 그런데 만일 칩4가 성격이 확실히 드러나서 자기를 배제한다 그러면 그 땐 얘기가 달라지겠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이 압박 보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며,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의식한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박 교수는 윤석열 정부 들어 미한동맹을 글로벌 포괄적전략동맹으로 한층 강화하는 움직임에 대응해 중국이 한국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한국이 미국과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중국이 한국에게 좀 더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요. 또 하나는 한국 국내 여론이죠. 한국 내 여론에서 반중 감정이 80%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걸 신경 쓴다는 거거든요.”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그러나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경쟁 속에서 북한을 적으로 돌리거나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할 것이라며 다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오는 10월 당 대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북한의 전략도발에는 부정적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