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일, 도네츠크와 루한시크, 헤르손, 자포리자 주 등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4개 지역 병합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궁에서 점령지 친러 행정 당국 지도자들과 병합 조약을 체결하고 "러시아에 4개 지역이 새로 생겼다"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 땅을 지킬 것"이라고 연설했습니다.
이어서 이번 병합 조치를 비판하는 미국에 반박하며, 핵무기 사용을 언급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2차대전 당시) 일본에 두 차례(히로시마·나가사키) 핵무기를 사용하는 선례를 남겼다"면서 "서방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앞서 진행한 주민투표 이후 점령지 친러 당국의 병합 요청은 "유엔 헌장에 보장된 자결권에 따른 것"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 우크라이나에 협상 요구
이날(30일)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요구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점령지 병합 조치가 "소비에트연방(소련)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는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우크라이나 당국을 향해 "즉각 군사행동을 멈추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조약 체결식에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데니스 푸실린 수반,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수반, 자포리자 주의 예브게니 발리츠키 군-민합동행정위원장, 헤르손 주의 볼로디미르 살도 군-민합동행정위원장 등 점령지 친러 행정 당국 수장들이 참석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조약 체결식 직전, 점령지들을 러시아 영토에 편입하는 포고령에도 서명했습니다.
이날 저녁 모스크바 크렘린궁과 도심 일대에서는 4개 점령지의 러시아 합류를 축하하는 공연과 부대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붉은광장에서 열린 록 콘서트에 참석해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외치며,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불렀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콘서트 현장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게 영토를 넘겨주면서 현대 우크라이나가 형성됐다는 맥락의 주장을 펼치며 이번 병합 조치를 정당화했습니다.
이어서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과 상원에서 병합 조약 비준안을 처리하고, 푸틴 대통령의 최종 서명을 통해 비준을 재가하는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다음달 4일 상원에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이 예정됐습니다.
■ 젤렌스키 협상 거부 "점령군 축출이 유일한 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병합 조약 체결 당일인 30일 긴급 안보·국방 관계 최고위급 당국자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신속 가입 절차를 진행한다는 영상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이 메시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협상이나 대화를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언제나 협상 노력을 이끌어왔다"면서 "하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불가능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전체 영토에서 점령군을 몰아내고 우크라이나를 강화하는 것만이 평화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가혹한 대응' 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병합 강행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매우 가혹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29일)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쓸모없는 주민투표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진행한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러시아 병합 찬반 주민투표에서 지역별 최고 99% 넘는 압도적 찬성이 나왔다고 각 지역 친러 당국이 밝힌 바 있습니다.
■ 바이든 "러시아 주장 절대로 인정 않을 것"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을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9일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진행된 미-남태평양도서국가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절대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과정에 '절대(never)'라는 단어를 세 차례 연속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어서 "이른바 주민투표는 완전한 가짜"라고 말한 뒤 "(압도적 찬성이 나온) 결과 역시 모스크바(러시아 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진정한 의지는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에서 보듯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추구하기 위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유엔 헌장, 그리고 주권과 영토의 기본 원칙에 대한 명백한 위배"라고 강조했습니다.
■ 미 국무 "우크라이나 국민 계속 지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29일) 별도 성명을 통해 "미국은 사기 주민투표의 결과나 합법성, 러시아의 영토 병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동맹·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자국 영토를 수호하려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 내에서 우크라이나의 통합과 주권, 독립, 영토를 지지한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얼마가 걸리든 필요한 만큼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주민투표와 그 결과에 따른 러시아 병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행할 경우 러시아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관련 절차를 이행함에 따라, 병합과 관련된 인사와 기관 등을 추가 제재할 예정입니다.
미국은 또한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 러시아 최고위 당국자들이 영토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관해, 핵무기 사용 동향을 사전 포착하기 위한 정보 감시 활동을 강화했습니다.
■ 유엔 총장 "주민투표 법적 효력 없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러시아의 행보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구테흐스 총장은 29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의 영토를 무력이나 위협으로 병합하는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하면서 "절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 우크라이나 전쟁은 "소련 붕괴 결과"
이런 가운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옛 소련 붕괴의 결과라고 29일 주장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일부 CIS(독립국가연합·옛소련권) 국경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이 모든 것이 소련 붕괴의 결과"라고 이날 독립국가연합(CIS) 정보기관장들과의 영상회의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서방이 아시아 일대와 CIS 지역에서도 긴장 고조를 획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외부로는 안보, 내부로는 안정이 중요하다"고 푸틴 대통령은 강조했습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역량을 끌어모으는 사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에서 국경 분쟁이 일어나고, 조지아가 러시아로부터 남오세티야 압하지야 수복을 노리는 등 옛 소련권 국가들에서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입니다.
아울러 지난 21일 푸틴 대통령이 부분적 군 동원령을 내린 뒤 러시아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져 수천 명이 체포됐습니다.
또 국외로 이동하는 러시아인이 급증하는 등 러시아 내부에서도 불안정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 "서방, 혁명 촉발 준비 중"
푸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관해 "서방은 어느 나라에서든 색깔혁명과 유혈사태를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고 이날(29일) 회의에서 주장했습니다.
색깔혁명은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조지아의 '장미 혁명', 이란의 '녹색 혁명' 등 옛 소련 지역을 포함한 곳곳에서 2000년대 들어 벌어진 독립 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의 지정학적 반대자들과 적들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누구든 배신하고 어느 나라든 위기의 '그라운드제로(폭발이 발생한 원점·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만들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같은 비난의 대상으로 '서방'과 '지정학적 반대자들'을 거론하면서 특정 국가를 지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러시아 매체들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가리킨 것으로 해설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