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사실상 종료를 선언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고강도 방역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통제 일변도의 방역정책으로 능동적인 대응 수단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경제난 심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세계적 대유행 전염병인 팬데믹으로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극복을 선언했습니다.
[녹취: 윤석열 대통령] “오늘 중대본에서 코로나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조정하고 6월부터 본격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3년 4개월만에 국민들께서 일상을 되찾으시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를 5일 권고로 전환하고, 또 입국 후 유전자증폭 즉 PCR 검사 권고를 해제한다”며 “입원 병실이 있는 병원 이외 모든 장소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신종 코로나 방역 조치를 대부분 해제하며 사실상 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화 됐다는 의미의 '엔데믹(endemic)'을 선언한 겁니다.
이로써 한국 국민들은 2020년 1월20일 국내 첫 환자 발생 이후 고강도의 확진자 격리 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다양한 방역 규제를 버텨온 끝에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이에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일 신종 코로나에 대해 내렸던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해제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여전히 고강도 방역정책을 고수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신종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지만 신종 코로나와 더불어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위드 코로나’ 단계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상방역사업을 ‘국가사업의 제1순위’로 놓고 아직도 실외 마스크 착용과 꾸준한 소독작업 등을 실시하고 있고, 관영매체들은 의료기관의 역할과 주민의 방역 의식 등을 강조하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국경 봉쇄 조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와 겹쳐 북한 경제와 민생을 옥죄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 사태를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 강화에 활용하고 있고, 주민들로부터 신종 코로나 사태 종식을 선언한 외부 세계 소식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이 통제 일변도의 방역정책을 고수,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동적인 수단들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경제난 심화를 자초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미 방역대전 승리를 선언하며 체제 선전에 활용해 온 북한으로선 지금의 방역노선을 바꾸기도 어려워졌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지금 경제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세계 정상국가들처럼 뭔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선제적으로 자기들이 차단해 버린 거에요. 그렇다고 이제 선전 방향을 바꿔서 다르게 선전을 할 순 없는 것이고.”
국경 봉쇄로 인한 중국과의 교역 위축으로 식량 등 생필품 품귀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주민들의 삶은 어려움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올들어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곡물 수입을 늘렸지만 지난해 여름 이후 쌀과 옥수수 가격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일부 회복된 해상과 철도 교역 이외에 육로 교역이 풀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육로가 열리지 않는 조건에서 단둥을 통해서 열차로만 들어오는 게 한계가 있거든요. 북한 경제가 무슨 시멘트나 강철이나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존이 문제인데 그것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육로 교역에 있다는 거죠.”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북한의 쌀 가격은 kg당 6천100원, 옥수수 가격은 3천200원를 기록했습니다.
북중 육로 교역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에 더 민감한 북한이 봉쇄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철도와 해상 무역의 일부 회복을 통해 경제적으로 급한 불을 끄려는 의도라며 육로 교역 재개와 관련해 들려오는 소문들은 많지만 그 시기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이와 함께 신종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발이 묶인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북한 귀국 시기도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5월 달 귀국하라고 했는데 상반기는 어렵다, 하반기로 가야 한다는 설이 해외 나와있는 노동자들 안에, 직접 명령은 없는데요, 그 설이 유포되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태 박사는 북한이 인적 왕래를 수반하는 육로 교역 재개 조치를 취할 경우 신종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외부 세계의 소식이 북한 내부로 유입될 수 있다며, 북한 당국이 조기에 이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제 와서 주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백신 접종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고 그렇다고 백신 접종도 안된 상태에서 중국처럼 갑작스럽게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입니다.
[녹취: 이재갑 교수] “백신 접종 없이 이 상황을 이겨내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조금 조금씩 풀어가면서 면역을 획득한 사람의 숫자를 늘려가는 방식 밖에 없을 거고요. 대가는 고령층의 많은 사망자 수를 유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지난해 5월 첫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고 공개한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누적 확진자가 500만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