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할 능력과 책임이 있다고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밝혔습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최근 중국을 방문해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1일 한국을 방문해 최영삼 한국 외교부 차관보와 오찬 겸 회담을 갖고 장호진 1차관을 예방하면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최근 방중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동행했던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중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이 있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중국이 책임 있는 자세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최 차관보와의 회담에서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통해 미중이 날로 무모해지는 북한의 도발 행위와 위협적 언사에 관해 논의했다며, 미국 측은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보유한 특수한 위치에 있는 만큼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차관보도 “북한의 도발 중단과 비핵화가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체의 공동 이익”이라는 미한 양국의 인식을 재확인하면서 “이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촉구해가자”고 말했습니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또 블링컨 장관이 중국 측과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대화를 가졌다며 미중 사이 오해와 오판에 따른 충돌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중국 측과 고위급 소통채널을 유지하는 한편, 자유롭고 개방된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 우방국들과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18일부터 이틀 간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장 등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 측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든 미사일 시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를 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를 다루기 위한 협상 테이블로 견인하는 데 중국의 협력을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자신의 협조 요청에 대해 중국 측이 “약속한 건 없다”고 전했지만 일단 미중 간 고위급 소통 과정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진 만큼 중국 측의 향후 대응 방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중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는 것은 두 나라가 패권경쟁을 벌이면서도 북한 문제를 협력이 가능한 분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국이 북한 의제를 중요 의제로 상정했고 어쨌든 미국은 그것을 중국과 협력해야 할 분야로 식별해서 얘기를 했다는 거죠. 당장 뭐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앞으로 미중 간 대화가 지속된다면 북한 문제도 그 안에서 의제로 다뤄진다는 것을 보여준 거죠.”
블링컨 장관에 따르면 친강 부장은 미국 워싱턴에서 후속 회담을 진행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미국 측은 오는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참석할 가능성 또한 열어두고 있습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블링컨 장관의 발언에 대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난점이 매우 명확하다고 생각한다”며 “각측은 문제의 난점을 직시하고, 각자의 책임을 감당하고, 유의미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이른바 ‘합리적 안보 우려’를 존중하지 않고 북한이 취한 긍정적인 조치에 보상하지 않은 것이 한반도 상황 악화의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에 대한 비난과 추가 제재에 반대해왔습니다.
따라서 마오닝 대변인의 발언은 중국에만 대북 영향력 행사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국도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은 미중 갈등 과정에서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막고 대중 경제 압박 조치가 빚어낸 미국 내 기업들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행보지만 패권경쟁 상대인 중국에 맞선 정책 기조는 변한 게 아니라며, 북한의 도발과 핵 고도화에 대한 양국 입장차가 좁혀지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지금과 같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계속되는 한 중국은 북한의 도발보다는 북중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기존 견해를 계속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중국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조건을 북한이 원하는 대로 좀 고쳐달라는 그런 뉘앙스인데 거기에 대해 미국은 과거와 변함이 없는 그런 대북 스탠스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 핵 문제에 대한 미중 협력이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간 날 선 대립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며, 이런 흐름에서 미중은 물론 북한도 각각 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대형 도발을 억제할 필요성이 있고 중국은 북한의 대형 도발로 인한 미한일 군사 협력 강화가 안보상 큰 부담이라는 점, 그리고 북한은 경제난 속 잇단 도발에 따른 피로감이 한계치에 왔을 수 있다는 게 조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가장 강경한 카드, 대북 압박 카드는 중국이 쓰기 어렵고요. 그러나 어느 정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카드는 가능하지 않겠느냐, 북한도 필요성이 있거든요. 북한도 지금 도발 피로감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본다면 중국의 역할이 있을 수 있고.”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으로 북한의 셈법이 복잡해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1일 국제문제 평론가 정영학 명의의 글을 통해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대중국 압박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도발자의 수치스러운 구걸 행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대중 압박과 억제가 되레 자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부메랑이 되고, 미중 대결이 미증유의 군사적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관계 완화를 구걸하고 있다고 중국 편을 드는 논평을 낸 겁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으로선 미중 갈등이 조정 국면에 들어가고 중국이 대화 중재 역할에 나설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순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북한연구실장] “미중이 조정 국면으로 들어가서 좀 더 적극적인 협력 구도로 만약 바뀐다면 북한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질지 굉장히 불안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어떻든 전략무기 개발에 중국과 러시아가 직간접적으로 동조하는 형식이지만 그게 만일 불리해진다면 북한 입장에선 다시 고립된 형식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우려할 수밖에 없는 거죠.”
홍 실장은 비록 논평 주체의 급이 높진 않지만 북한의 반응이 매우 신속했다며 블링컨 장관 방중을 그만큼 예의주시했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