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오는 27일로 70주년이 됩니다. 한반도가 70년이란 긴 세월을 전시도 평시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온 것인데요, 한반도 정전체제가 왜 이렇게 장기간 계속되는 것인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유엔군 대표 윌리엄 해리슨 미군 중장과 공산군 대표 남일 북한 인민군 대장이 정전협정 체결을 위해 판문점에 도착했습니다.
두 사람은 11분에 걸쳐 정전협정에 서명한 뒤 악수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10시를 기해 휴전선 일대의 포성이 멎었습니다. 3년1개월 간 계속된 6.25 한국전쟁이 멈춘 겁니다.
당시 정전협정에 미국과 북한, 중국은 서명했지만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정전협정을 연구해온 제성호 한국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제성호 교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대해 휴전 반대 입장이었고, 협상에는 백선엽 장군을 포함해 5명의 장군이 참여했지만 옵서버 수준이었고…”
5개조 63항에 이르는 정전협정의 핵심은 “전쟁의 정지와 적대 행위의 완전한 정지”입니다.
이를 위해 한반도 동서를 가로 지르는 248km의 군사분계선을 긋고, 4km 너비의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했습니다.
또 정전협정을 관리, 감시하기 위해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와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도 만들었습니다.
군정위는 지난 70년 간 6.25같은 전면전을 방지하고,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는 대화채널로 활용돼 왔습니다.
문제는 정전협정이 상당 부분 와해됐다는 겁니다.
우선 비무장지대가 ‘중무장지대’가 됐습니다. 당초 비무장지대는 개인화기를 제외한 어떠한 무기도 반입할 수 없는 완충지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비무장지대에는 중화기로 무장한 200여개 초소가 늘어서 있습니다.
정전을 감시, 관리하는 군정위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1993년 3월 유엔사령부는 수석대표로 한국 군 장성 황원탁 소장을 임명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이를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군정위를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 군정위는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도 1994년 9월 군정위에서 대표단을 철수시켰습니다.
정전협정 41조에 근거한 중감위도 해체됐습니다.
당초 중감위는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4개국으로 구성됐습니다. 그러나 1993년 4월 중감위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단이 철수했습니다. 이어 1995년 2월 폴란드 대표단도 철수했습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한국 고려대학교 남성욱 교수는 일반인들은 정전협정이 와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남성욱 교수] ”정전협정은 형해화됐다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있습니다.”
북한은 또 2013년 3월 3차 핵실험 후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정전체제가 70년 이상 계속되는 것 자체가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몇 달 간의 휴전을 목적으로 했던 정전협정이 70년이나 지속된 가장 기이한 체제라고 볼 수있구요.”
워싱턴의 원로 한반도 전문가인 한미연구소 래리 닉시 박사는 정전체제가 장기화된 것은 한국전쟁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2차대전을 비롯한 대부분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상황에서 끝났는데 한국전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중단됐기 때문에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래리 닉시 박사] ”Military equality between two sides as part of armistice…”
정전협정 이듬해 열린 제네바회담 결렬과 그 이후 냉전으로 인해 정전체제가 장기화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시 제성호 교수입니다.
[녹취: 제성호 교수]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이 열려서 정전체제를 끝낼려고 했는데 그 때 미군 철수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회담이 결렬되고, 그 이후 새 체제는 만들어 지지 않고 또 냉전이 지속돼 왔기 때문에…”
북한은 1960년대부터, 그리고 한국은 1970년대부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여러 시도와 제안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이런 시도는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종전 선언을 비롯한 평화협정 문제가 본격 부상한 것은 2018년이었습니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그 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추진한다”고 합의했습니다.
이어 문 대통령은 2021년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공식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제안에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종전 선언 제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종전 선언과 관련해 미국은 “순서와 시기, 조건에서 한국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한국의 종전 선언 제안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종전 선언을 둘러싼 이같은 견해차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 두 가지 시각을 반영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당시 문 대통령이 견지했던 것으로 종전 선언같은 상징적 조치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한반도 문제, 북 핵 문제가 워낙 복잡하고 장기성을 요구하니까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 의지의 확인으로 종전 선언부터 시작하자고 했던 것인데…”
반면 보수적인 시각은 지금처럼 핵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종전 선언은 별 의미가 없고 북한의 의도에 휘말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제성호 교수입니다.
[녹취: 제성호 교수] ”종전 선언을 해도 정전협정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론상 얘기고 현실정치 세계에서는 종전 선언의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크거든요. 왜냐면 종전 선언의 함의는 전쟁이 끝났다는 것인데, 전쟁이 끝났으면 왜 북한을 적대시하는 외국군이 2만8천500명이 주둔하냐, 또 유엔사 해체…”
종전 선언 또는 평화협정보다 대북 억제력이 중요하다는 미국의 정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열린 미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 소위원회에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바이드 행정부가 “한국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원하느냐’는 민주당 브래드 셔먼 의원의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 “Candidly speaking, rather than focusing on a peace treaty, I think we rather focus on the immediate problem.”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솔직히 말해 지금은 북한과 평화협정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집중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