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북한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를 직접 타격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벼와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작황에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기상청은 8일 브리핑을 열고 “태풍 ‘카눈’이 10일 남해안에 상륙한 뒤, 11일께 북한 쪽으로 북상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습니다.
기상청은 이번 태풍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할 것이라는 예상경로를 제시함에 따라 태풍이 예상대로 진행될 경우 한반도 전역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카눈’은 8일 오전 9시 기준 일본 가고시마 남쪽 약 300㎞ 부근 해상에서 시속 3㎞의 속도로 북북동진하고 있습니다.
카눈의 강도는 ‘강’ 상태로 이동 중이며, 남해안에 상륙하는 10일 오전에도 비슷한 세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강도 ‘강’은 순간풍속 초속 33~44m로, 기차를 탈선시킬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가집니다.
기상청은 ‘카눈’이 남해안 도착 후 한반도 중앙을 관통해 11~12일 북한을 휩쓸고 지나간 뒤 중국 동북부 내륙에서 힘을 잃고 온대저기압으로 약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풍과 함께 많은 비를 뿌릴 전망입니다.
현재 예상대로라면 한반도 전역이 풍속이 초속 25m 이상인 태풍 폭풍반경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기상청 통보관을 지낸 김승배 한국자연재난협회 본부장은 ‘카눈’이 한반도 정중앙을 관통하는 경로는 이례적이라며 이 과정에서 지역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한국에선 하루 300~500㎜ 이상, 북한에선 200㎜ 이상의 폭우가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승배 본부장] “북한에 11일 새벽에 상륙할 때 쯤은 태풍이 약해지지만 그래도 그 태풍 세력은 유지한 채 북한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북한 역시도 강한 바람과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북한은 이에 따라 바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7일 태풍경보를 발령하고 지역에 따라 센바람, 폭우, 해일, 해상경보 등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관영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10∼11일 강원도와 함경남북도, 라선, 황해남도에 센바람 주의경보, 9∼11일 강원도와 함경남북도 등지에 폭우경보, 10∼11일 동해안에 해일주의경보, 10∼11일 동해와 10일 서해에서 센바람 높은물결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1면에 태풍 관련 기사들을 집중 배치, 이동 경로와 미칠 영향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만반의 대비를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특히 올해 인민경제 관련 과업 중 1순위에 ‘알곡 고지’ 점령을 내세운 만큼 이번 태풍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전 국가적인 대응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신문’ 1면 사설은 “신속하고 적실한 대책을 철저히 세우지 않는다면 올해에 들어와 지금까지 성실한 땀과 노력으로 떠올린 그 모든 성과들이 일거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북한은 올들어 기상 조건이 좋았고 주민 노력 동원을 통해 모내기와 파종을 적기에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민 출신의 북한 농업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북한의 주요 곡물로 전체 밭 파종 면적의 80%를 차지하는 옥수수는 뿌리가 땅 깊숙히 박히지 않아 강한 바람에 취약한 작물이라며, 한창 알곡이 여무는 시기에 태풍으로 인한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열매가 이제 익어가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옥수수가 넘어지면 옥수수가 열매 익히는데 영양분을 누워서 보내는 게 아니라 일어서는 데도 힘을 써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피해를 받으면 엄청나게 피해를 받죠.”
‘노동신문’은 또 김덕훈 내각총리가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인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의 여러 군의 농사 작황을 직접 살피면서 태풍 피해 최소화를 위한 관개와 배수 체계를 점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김혁 박사는 지난해 가뭄을 심하게 겪은 북한이 올들어 곡창지대 관개시설 정비에 주력해 왔지만 기상당국 예상경로대로라면 태풍이 북한의 곡창지대를 직격해 제방 붕괴와 토사 유실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혁 박사] “황해남북도, 평안남북도 이 지역은 북한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식량 문제만 갖고 얘기했을 때 80% 정도 차지하죠. 그 태풍이 직접적으로 그 지역을 지나간다고 하면 엄청난 생산량 하락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는 거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은 태풍보다는 폭우에 취약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산에 있는 나무를 땔감으로 쓰면서 민둥산에서 빗물에 쓸려 내린 토사가 하천의 하상을 높여 잦은 범람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관개시설 정비에 주력했지만 그나마 부족한 자재들이 평양 살림집 건설에 투입되면서 관개시설 공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관개시설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부분 장면을 보면 일부를 제외하곤 돌 정비나 토사 같은 것을 다지는 작업인데 이런 것들은 비 오면 그냥 쓸려 내려가거든요. 만일 폭우가 내린다면 북한의 자연재앙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한국 기상당국은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의 확장, 상층 기압골의 위상과 강도 등의 요인들 때문에 ‘카눈’의 발달과 이동 경로 변동성이 큰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승배 본부장은 통상 태풍이 육지에 상륙하면 느리게 진행하면서 비 피해를 키우는데 이번 태풍은 북한 지역을 통과하는 동안 진행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카눈’이 상층의 제트기류를 만날 가능성이 큰데 이 제트기류가 마치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이 태풍의 수증기 덩어리를 끌어 당기면서 한반도 중부지방을 지나고부터는 진행 속도가 매우 빨라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한편 ‘카눈’은 태국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열대과일의 한 종류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