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중동이 다시 전쟁의 포화 속에 휘말렸습니다.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자 이스라엘은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는데요. 주요 매체는 이 전쟁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구분 짓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하마스는 어떤 조직이고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하마스와 파타”
팔레스타인에는 크게 두 주요 정치 세력이 있습니다.
지금 중동은 물론 전 세계를 극도의 혼란과 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하마스’와 국제사회가 공인한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를 주도하고 있는 ‘파타’입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분해야 합니다.
하마스와 파타는 팔레스타인의 정당들이자 정치 세력입니다.
팔레스타인은 나라는 없지만 1994년 출범한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산하에 정부 조직이 있고, ‘파타’, ‘하마스’, ‘제3의 길’, ‘팔레스타인인민당’ 같은 여러 정당도 있습니다.
중도 온건 성향의 파타는 현재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 있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의 집권당입니다. PA가 태동하기 전,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주축 세력으로서,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대표 정당이자 가장 오래된 정치 세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건 파타당이 이끌고 있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입니다.
이스라엘도 문제가 생겨 협상이 필요할 때면 파타당 정부와 대화에 나서 왔고요. 지금 싸우고 있는 대상도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하마스’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정당이라기보다는 ‘무장 정파’로 익숙합니다. ‘정파(political faction)’란 공통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정당의 하위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무장한 정치 집단, 하마스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패망입니다.
“하마스의 태동”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민중봉기, 이른바 ‘1차 인티파다(Intifada)’가 발발한 1987년 10월 공식 창립됐습니다.
1차 인티파다가 결정적 계기가 되긴 했지만, 하마스의 태동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오랜 무장 투쟁 역사가 함께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스라엘과 피 흘리는 영토 전쟁을 벌여온 팔레스타인은 198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정치적,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 중심에는 당시 지금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이끌었던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과 파타당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을 거부하고 나타난 게 바로 하마스입니다.
하마스는 아랍어 ‘이슬람 저항 운동’의 영어 표기 앞 글자를 딴 약어인데요. 아랍권 최대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에서 활동하던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결성됐습니다.
하마스는 산하에 ‘알카심 여단’이라는 무장조직을 두고 계속해서 반이스라엘 강경 투쟁 노선을 걸었고요. 동시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항전 의식을 고취시키고 이슬람식 사회복지 사업을 약속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해 나갔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 분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미국의 중재로 1993년 양측이 중동평화구상, 이른바 ‘오슬로협정’을 체결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습니다.
골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적으로 공존한다는 궁극적 목표와 함께,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일대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치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오슬로협정에 따라 이듬해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를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출범하게 됩니다.
오슬로협정은 쉽지 않은 중동 해법을 찾기 위한 역사적인 합의였지만, 양측 모두, 이 협정을 파기하려는 극단주의 세력이 힘을 얻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오슬로협정의 주역인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암살과 우파 정당의 득세로 이어졌고, 팔레스타인도 아라파트 수반에 이어 들어선 마무드 압바스 수반 정부 역시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 간의 유혈 충돌도 멈춰지지 않았는데요.
이스라엘과의 무장 투쟁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하마스와 외교적 해결 방식을 내세우며 과격한 무장 노선만 고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파타 간 갈등과 대립의 골은 더 커져갔습니다.
“2006년 총선과 하마스”
2006년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총선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상황을 만든 분기점 역할을 했습니다.
이 선거에서 가자지구를 기반으로 한 하마스는 부정 부패 의혹과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파타당을 누르고 크게 승리하는데요. 당시 국제사회는 이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한 가운데 치른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과 유엔은 공정 선거를 치른 팔레스타인인들을 축하하고, 비폭력적이면서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새 정부를 기대하는 4자 공동성명을 내놨는데요.
하지만 하마스는 이를 거부하고 지속적인 이스라엘 투쟁을 선언합니다.
이에 파타당을 비롯해 다른 정당, 정파들은 하마스가 구성하는 통합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의 파타 정부와 가자지구의 하마스로 갈라져 대립과 반목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무력 투쟁 불사를 선언한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제재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통치의 가자지구”
시나이반도 동북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자지구는 길이 41km, 폭 10km에 불과한 약 365㎢ 면적의 아주 좁은 땅입니다.
여기에 약 23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지구에 대해 지중해에 면해 있는 서쪽을 제외한 세 방향 모두에 높은 장벽을 설치하고 엄격한 통행 관리와 물품 반입 등을 통제해 왔습니다.
하마스의 무기 전용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이유인데요. 여기에 하마스와 충돌이 벌어질 때면 번번이 강력한 봉쇄 정책으로 대응해 가자지구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우려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늘 함께 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양측의 충돌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우려와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에서도 이미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은 하마스 집단은 가자 주민들의 존엄성과 안전을 생각하지 않으며, 이들을 인질로 삼고 테러 공격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는 완전히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레바논과 시리아 내 무장 집단의 하마스 지원 공격에 이란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어 제5차 중동전쟁 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당선인입니다.
지난 15일 남미 국가 에콰도르에서 대통령 결선투표가 진행됐습니다.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의 사임에 따른 보궐 선거였습니다.
이 결선투표에서 국민민주행동당의 다니엘 노보아 후보가 시민혁명운동당의 루이사 곤살레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노보아 당선인은 1987년 11월생입니다. 올해로 35살인데요. 오는 11월에 취임하면, 에콰도르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자 현직 세계 최연소 대통령의 기록을 갖게 됩니다.
노보아 당선인은 바나나 재벌가 출신 정치인입니다.
바나나는 에콰도르의 주력 수출 품목인데요. 노보아 당선인의 집안은 이 바나나 수출로 부를 일군 재벌입니다.
노보아 당선인은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노스웨스턴대학교, 하버드대학교,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 공공정책, 행정 등의 학문을 습득하고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일찌감치 아버지 회사 경영에 참여했던 그는 2021년에 정계에 뛰어들었는데요. 2021년 총선 당시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그의 정치 이력은 매우 짧고요. 에콰도르 안에서도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국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은 그가 정치 활동 불과 2년여 만에 대권을 거머쥐게 된 데는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와 재벌가 출신인 그가 낙후한 에콰도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인데요.
노보아 당선인도 승리 소감에서 안전하고 일자리가 있는 에콰도르를 만들겠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전임 대통령 잔여 임기인 1년 반 정도인데요. 이 기간의 성과 여부에 재선 승패가 달려 있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됩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팔레스타인의 두 주요 정치 세력 하마스와 파타의 차이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당선인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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