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내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북한 곡물가격이 최근 들어 급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 작황이 예년 수준을 회복하면서 추수된 곡물들이 시장에 나온 때문이지만 식량난을 해소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23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신의주 지역 최근 쌀 거래 가격이 kg당 5천원, 옥수수는 2천300원선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도 지난 15일 평양의 한 공식 시장에서 쌀 1kg이 4천900원에 거래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데일리NK’는 지난 1일 기준 평양 시장 쌀 가격이 1kg에 6천400원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2주 만에 23% 하락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데일리NK’ 조사에 따르면 평양 시장의 쌀 가격이 kg당 4천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1년 7개월여 만입니다.
또 지난 15일 기준 평양 시장의 옥수수 가격도 kg당 2천450원으로 지난 1일 기준 가격보다 16% 하락했습니다.
조충희 소장은 가을에 추수된 옥수수가 시장에 나오면서 주요 곡물가격이 떨어지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조 소장은 북한의 올해 식량 작황이 작년보다는 크게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며 평안남도의 경우 작년에 정보 즉 헥트아르(ha) 당 1.7t 수준이었던 옥수수 생산량이 올해는 2.8t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의 수매분을 제외한 개인과 농장 귀속분이 증가했고 이 옥수수들이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가격을 낮추고 있다는 게 조 소장의 설명입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최근 옥수수로 진행되던 국가 의무 수매계획이 끝난 단위들에서 자율판매와 계약판매를 하기 시작해서 그 판매들이 식량판매소나 시장에서 교류가 이뤄지면서 상당수 현물들이 시장에 나오고요.”
조 소장은 대형 곡물 상인 또는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묵은 쌀과 옥수수가 시장에 나오는 조짐이 있고 중국, 러시아 등 해외로부터의 식량 수입 증가 등 복합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만 공식적으로 추수한 쌀은 도정 과정을 거쳐야 해서 아직 시장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김혁 박사는 주민들이 소토지 등에서 사적으로 생산한 쌀은 이미 시장에 나오고 있다며 식량 가격 하락의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 TV 매체가 보도한 영상들을 보면 이번에 수확한 벼의 상태가 무게, 알곡의 수, 여문 정도 등 작년보다 크게 양호하다며 올해 전체 곡물 수확량이 500만t을 훌쩍 넘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는 당분간 식량 가격이 하향 안정화할 가능성 때문에 주민들이 갖고 있는 곡물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김혁 박사] “민간 차원에서 일반 주민들이 농사짓는, 소토지를 통해서 확보되는 식량 자체가 생산량이 많이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일반 주민들 생산량 자체가 높아지다 보니까 그것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데 지금 안 내놨을 때 쌀 가격 상승을 보기엔 한계가 있다는 거죠.”
북한 주요 관영매체들은 연일 올해 전국 추수 상황을 전하며 ‘전례 없이 좋은 작황’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주요 곡창지대에서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가을걷이와 탈곡을 마쳤고 ‘국가알곡수매’까지 성과적으로 끝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올해 일부 농경지의 침수 피해가 있긴 했지만 지난해보다 자연재해가 크지 않았고 기후도 양호해 작황이 나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공개한 ‘2022년도 북한 식량작물 생산량 추정 결과’를 보면 북한은 지난해 쌀 207만t을 포함해 451만t을 수확한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의 올 작황을 풍년이라고 평가하진 않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비료와 농자재, 농기계를 가동하기 위한 유류 등 부족으로 생산성이 여전히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달 말 브리핑에서 북한의 올해 식량 작황에 대해 “여러 가지 정황상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작황 상태를 보이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가을걷이 덕분에 식량 가격이 하락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여전히 북한 당국의 양곡판매소가 지속적으로 낮은 가격에 식량 공급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충희 소장은 가을철 수확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kg당 5천원인 쌀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북한이 지난달 정상회담을 벌이며 밀착 강도를 높이고 있는 러시아를 통해 식량 부족을 해소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달 러시아 언론들은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가 북한에 식량 원조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 측이 ‘상황이 어려워지면 의지하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5년만에 정상회담인데 식량 지원을 얻어왔다 그러면 이게 권위에 손상이 가거든요. 중요한 건 러시아가 제안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죠. 마체고라 대사의 얘기는 북한이 거부한 게 아니고 지금은 괜찮다고 그랬으니까 조금 더 해석해 보면 가을 추수기는 괜찮다, 부족하면 요청하겠다 이렇게 볼 수 있죠.”
북러는 다음달 평양에서 10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를 열 예정입니다.
통일부는 이 회의에서 식량 지원, 경제와 물류 협력, 북한 노동자 파견 등 다양한 의제를 다룰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북한은 광범위한 분야의 협력을 원하겠지만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로선 북한과 당장 협력할 수 있는 게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는 북러 경제공동위원회에서 북한은 러시아가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재래식 무기와 포탄을 제공하는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공급받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북한이 기대라든가 자기들의 수요를 낮춰 조정을 해서 현재 러시아에서 가능한 군사 협력을 앞에 두고 그러면서 챙길 수 있는, 식량이라든가 이 부분을 챙기는 그런 방안을 택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죠.”
북한은 ‘알곡’ 부문을 올해 경제 분야에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12개 고지 중 첫 번째로 꼽을 만큼 식량 확보에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러시아로부터의 식량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