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군사정찰위성 발사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자주권 문제로 미국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정당화하려고 북한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며 비핵화를 향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주권국가의 자주권은 그 어떤 경우에도 협상 의제로 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미국과 마주 앉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30일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담화에서 “북미 대화 재개의 시간과 의제를 정하라고 한 미국에 다시 한번 명백히 해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지난 7월17일 이후 넉 달여 만입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지난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문제를 논의한 데 대한 비판 차원에서 나온 겁니다.
김 부부장은 안보리를 “극도의 이중기준이 적용되는 무법천지”라며 “단호히 규탄 배격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을 지적한 데 대해 “마치 자신들이 현 상황의 ‘희생자’인 것처럼 묘사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미국의 무기들이 공화국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에 앞서 한국 항구들에 때없이 출몰하고 있는 전략적 목표 즉 전략무기들이 어디에서, 왜 왔는지를 명백히 해명해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앞에서는 대화타령을 늘어놓고 뒤에서는 군사력을 휘두르는 것이 미국이 선호하는 ‘힘을 통한 평화’라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같이 준비되어야 하며 특히 대결에 더 철저히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한 대미 입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권적 권리에 속하는 모든 것을 키워나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며 공화국은 모든 유엔 성원국이 향유하는 주권적 권리들을 앞으로도 계속 당당히 제한 없이 행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가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즉각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나올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주일 외교부 부대변인입니다.
[녹취: 이주일 부대변인] “북한은 핵 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간 끊임없이 외부에 책임을 전가하며 거짓되고 왜곡된 주장을 계속해 왔습니다. 모든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한반도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자명합니다.”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는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명분으로 끝내 미국으로부터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의도라며 향후 핵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주권적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선 오히려 더 군사정찰위성뿐만 아니라 핵 미사일 발전 수위를 높여서 결국 미국이 자신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들겠다는 속셈이 여기에 반영돼 있다, 그런 맥락에서 봐야 된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김여정 부부장 담화에서 ‘대화’와 ‘대결’을 모두 언급한 데 대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국의 태도 변화와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한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중국과 러시아가 예상대로 이번 안보리 회의에서 또 다시 북한을 두둔하면서 유엔 무력화가 재차 확인됐고 북한은 이런 국제정세가 자신들에게 기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홍민선임연구위원] “대화를 거부하지만 그 대화를 거부하는 명분 자체를 얘기할 때 주권 관련된 의제가 아니라면 대화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우리가 역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열려진 부분들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통일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담화 자체만 가지고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며 “담화 자구에 지나치게 의미를 둘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의 대표적인 대내외 매체들은 30일 한국의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와 미한일 안보협력 강화를 비난하는 논평을 동시에 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이 북한의 “자위권인 정찰위성 발사를 걸고 들며 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를 조작”해 냈다며 “마지막 안전고리마저 스스로 뽑아버린 망동”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면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든 것과 같은 비참한 결과가 괴뢰 역적 패당에게 차려질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국 기항과 미한일 연합해상훈련 등을 거론하며 한국이 “핵 전략자산들을 정기적으로 끌어들이고 3자 합동군사연습을 연례화하기로 하는 등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도발을 구체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한국의 이런 행보를 “상전을 믿고 설쳐대는 단말마적 발악”이라고 비난하면서 “괴뢰 지역에 언제 어떤 화를 불어올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위협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이같은 북한 측 논평에 대해 북한은 이미 수많은 위반행위를 통해 9.19 군사합의를 사문화했고 북한의 도발은 군사합의 효력 정지와 무관하게 자기들이 마음 먹으면 언제든 해 온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문 센터장은 논평에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와 미한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한 군사적 위협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지만 남북한 간 재래식 전력의 현격한 차이로 북한이 한국을 향한 직접적인 도발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문 센터장은 그 보다는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에 대한 한국 내 국론 분열이 북한의 노림수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9.19 군사합의와 관련해서 지금 국론이 나눠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지금 취하는 일련의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 이런 논리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에 힘을 실어주려는, 그렇게 해서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를 하면 얼마나 국민이 피곤하고 불안한 지 한 번 봐라 라고 하는 것이죠.”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1년 남은 미 대선 이후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정찰위성 후속 발사와 같은 전략 목표를 향한 행동은 지속하되 한반도 긴장을 과도하게 높이는 도발은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지금 미국 대선이 점차 본격화 되고 있거든요. 그러면 북한으로선 한반도 긴장이나 미국과의 대결 국면을 조성했을 경우 본인들에게 크게 유리하지 않아요. 민주당과 공화당 싸움에서 북한이 도발을 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 유리하지 않고 또 북러 간 무기 거래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세계 시선을 집중시킬만한 행동을 할 이유가 별로 없거든요.”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한국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도발에 나설 경우 대북 강경파인 현 집권 보수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셈법에 따라 한국을 직접 겨냥한 도발에 신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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