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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대남노선 전환 조치… 전문가 “핵 보유 인정, 한국 핵 공격 정당화 노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이후 북한은 대남노선의 전환을 시사하는 조치들에 나섰습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자국에 대한 미국의 핵 보유국 인정과 한국에 대한 핵무기 사용 정당화 등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한을 동족이 아닌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선희 외무상은 새해 첫 날 곧바로 대남 관계 부문 간부들과 함께 협의회를 열어 이행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북한의 각종 선전매체들은 홈페이지에서 ‘통일 지우기’에 나섰습니다.

‘우리민족끼리’는 홈페이지의 ‘통일은 우리민족끼리’ 코너를 삭제한 것으로 4일 확인됐습니다. 북한의 통일정책과 과거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소개한 코너였습니다.

남북 교류사업을 담당하는 민족화해협의회가 운영하는 선전매체 ‘려명’ 홈페이지에서도 대남 관련 소식을 다루던 ‘평화와 통일의 지름길’, ‘민족의 화해와 단합’, ‘6.15 통일시대’ 코너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움직임이 핵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진무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는 과거엔 핵무기 개발이 대미 억제용이라고 했던 북한이 핵 무력 법제화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열어뒀다며, 김 위원장이 남북한을 동족이 아니라고 규정한 것은 이런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국제사회에 도의적으로 자기 동족을 핵 무기로 완전히 말살시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러니까 자기들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저 나라는 동족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오경섭 기획조정실장은 3일 홈페이지에 관련 보고서를 올려 “김정은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핵 국가로 승인받기 위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오 기조실장은 “북한이 한반도에서 심각한 군사적 긴장과 무력 충돌을 일으켜 정세가 불안해질수록 미국과 한국이 핵 군축론과 핵 비확산론을 꺼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대남노선 전환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려 북 핵 문제에서 미한의 양보를 받아내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겁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액면 그대로 한국과의 동족 개념과 통일전략의 폐기 그리고 남북관계를 실질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정하는 ‘투 코리아’ 노선으로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립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통일 문제는 북한 정권의 정통성과 리더십에 직결된 사안이라며 김 위원장이 한국과의 동족관계를 절연하고 통일 과업을 폐기할 경우 정권 차원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고 명예교수는 김 위원장은 고려연방제 같은 북한 나름의 통일방안들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핵무기를 동원한 무력통일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통일과 관련해선 남북이 모두 공식적으로 언명하는 방안이나 담론이 있고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통일 전략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동안은 두 가지를 혼용하면서 활용했는데 실질적으로 이제는 무력에 의한 평정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북한은 정리를 하고 있는 거죠.”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규정은 아직 제도적 공식화의 수순을 남겨 둔 정치적 선언이지만 결국 ‘투 코리아’ 노선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 교수는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2021년 1월 8차 당 대회 당시 당 규약 개정 등을 통해 이런 조짐들을 보여왔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8차 당 대회에서 당 규약 개정을 통해 이전의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등의 문구를 삭제한 바 있습니다.

조 교수는 김 위원장이 한국의 보수는 물론 진보 세력에 대해서도 비난하면서 한국 자체에 대한 기대를 버렸고 미국에도 ‘벼랑 끝 전술’ 조차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성렬 교수] “관계를 끊고 싶다는 거죠. 벼랑 끝 전술은 뭘 얻을 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얻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얘기고요. 저는 이게 투 코리아로 가는 과정이라고 보고요. 다만 아직은 공식화된 건 아니라고 봐요. 결국은 9차 당 대회가 2년 뒤에 있잖아요. 2년 정도의 뜸 들이는 기간을 거쳐서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9차 당 대회 때 공식화할 것으로 봐요.”

북한이 한국을 주적화하는 대남노선 전환은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이번 전원회의에서의 대외정책 관련 발언 가운데 대부분이 한국에 대한 내용이었고 오히려 미국 관련 비중은 적었다며 협상 여지를 두고 있는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을 주적화하는 흐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글로벌 선진국가로 발전하면서 북한에겐넘보기 어려운 상대가 됐고 북한에 미치는 사상과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도 한국이 두려운 상대가 됐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한국과의 인연을 끊고 싶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보기에 남한은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등 모든 것들이 남한의 영향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북한의 주적이 남한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적과는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없죠.”

오경섭 기조실장은 “김 위원장이 집권 12년만에 무력통일 노선을 선언한 이유는 핵 무력 건설 노선에 대한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북한 주민들의 한국에 대한 동경과 추종을 완전히 근절시키기 위해 대남·통일 노선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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