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방경제가 한심한데 간부들은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북한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 2024년에는 경제 사정이 나아질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경제난 극복’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지방에 공장다운 공장이 없으며, 간부들은 뜨뜻미지근한 말이나 하고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인민들의 삶과 연관이 있는 지방경제가 한심한 상태인데 당과 정부는 후에 보자는 식의 태도를 취할 그 어떤 명분도 권리도 없습니다.”
이날 김 위원장의 연설은 10포인트 글자로 17페이지 분량인데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은 후반부에 5페이지 가량 나옵니다.
반면 연설 대부분이 경제에 대한 내용이며 앞부분을 차지합니다.
올해 북한 경제에 몇가지 희망적인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해 농사가 잘 돼 식량 사정이 나아졌고, 무역이 회복되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가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지난해 북한 경제는 “날씨가 좋아 식량 생산이 느는 등 예상보다 나은 한 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t’s little bit better. Main reason was the weather was better, it turn out weather was quite good.”
무엇보다 지난해 북한 농사가 비교적 잘 됐습니다.
한국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쌀과 옥수수(강냉이) 등 식량을 482만t 수확했습니다. 이는 전년도 보다 6% 늘어난 겁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도 지난 연말 평양에서 열린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알곡 생산 목표를 넘쳐 수행해 값비싼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랑했습니다.
한국의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원장도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농사가 잘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예년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전년도가 나빴기 때문에 그나마 증가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로 군수공업도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한국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여름부터 12월까지 컨테이너 5천여 개 분량의 무기를 러시아에 수출했습니다. 이는 152㎜ 포탄 기준으론 약 230만 발, 122㎜ 방사포탄 기준으론 약 40만 발에 해당됩니다.
포탄 가격이 1발 당 300-400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북한은 지금까지 7-9억 달러 어치를 수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최근에는 탄도미사일도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러 밀착으로 북한의 군수산업과 중공업 분야가 활기를 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기계산업과 같은 중공업이 발전되려면 군수산업이 뒷받침 돼야 하는데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는 중공업 중심의 군수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의 무역량이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입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북중 교역은 20억5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의 교역액(8억8천만 달러)의 2배를 넘는 규모입니다.
문제는 북한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는 조짐은 있지만 경제난을 극복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겁니다.
우선 식량 문제의 경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수요는 595만t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지난해 식량생산량은 482만t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27만t정도를 수입했다고 해도 여전히 86만t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북한 당국은 지난해 가을부터 장마당 곡물 판매를 금지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양곡판매소’에서만 팔도록 하고 있습니다.
권태진 원장은 당 간부는 양곡판매소 덕을 볼지 모르지만 일반 주민들은 별 혜택이 없다며, 올해도 식량난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양곡판매소 혜택을 보는 사람은 공장, 기업소를 착실히 다니는 사람들이고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은 여전히 시장에 가서 비싼 가격에 곡물을 사먹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도 정상적인 거래가 아닙니다.
북한이 포탄 수출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돈을 받아 식량난을 해결하고 원자재를 수입해 공장과 기업소를 돌린다면 경제난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포탄 수출의 대가로 전투기와 미사일, 인공위성 기술같은 무기와 장비를 도입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4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지원에 대한 대가로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 장갑차, 탄도미사일 제조 장비, 재료, 다른 첨단기술과 관련된 군사원조를 원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존 커비 조정관] ”We assess Pyongyang seeking military assistance from Russia including fighter aircraft, surface to air missile, ballistic missile production system.”
북한이 무기 수출로 번 돈을 핵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무기 도입에 사용한다면 주민들의 민생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탈북민 조충희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민 조충희 씨] ”자기 권력이나 체제 유지를 위해 군사 설비나 장비로 받기 때문에 경제에 도움이 안 되고, 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주민들 생활이나 시장이 좋아지고 경제성장을 한다는 것인데…”
북한과 중국의 무역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입니다. 그러나 북한 수뇌부는 귀중한 외화를 위스키와 와인을 수입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 한 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위스키는 393만 달러어치, 와인은 269만 달러어치에 달합니다. 모두 사상 최대치입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수입 위스키와 와인은 김정은이 국경이 개방돼 중국과의 교역이 시작됐음에도 여전히 심각한 국내 문제에 직면해 평양 엘리트들의 지지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와인과 위스키를 수입하는 것은 주민의 필요를 희생해서라도 평양의 엘리트층의 충성심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think the imported whiskey and wine reflects the fact that Kim Jong-un is trying to maintain the support of his elites in Pyongyang in the face of domestic challenges.”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인민경제 전반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며 “전력, 석탄, 질소비료는 100%, (중략) 살림집은 건설 중인 세대수가 109%로서 인민경제 발전 12개 고지가 모두 점령됐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이같은 발표에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당국은 2022년에 ‘12개 중요 고지’를 발표할 때 구체적인 생산 목표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또 지금 내놓은 것도 실적이 아니라 달성율(%)입니다. 이렇게 두루뭉수리하게 밝혀서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생산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 대비 1.4배 성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이는 북한 경제가 지난 3년 간 연속으로 7% 이상 증가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은 2020년 -4.5%, 2021년 –0.1%, 2022년 –0.2%로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임을출 교수는 북한 GDP가 실제로 성장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공장가동률이 낮았는데 지난 3년 간 GDP가 1.4배 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견해가 많습니다.”
다만 북중 무역이 회복되고 러시아에 무기가 수출되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25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자회사 소속 북한 경제 전문가 안위타 바수 씨는 북한 경제가 무기 판매와 북중 무역에 힘입어 0.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지방발전을 위한 새 정책도 제시했습니다. 정책의 이름은 ‘지방발전 20 X 10’ 으로 매년 지방의 20개 군에서 현대적인 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초보적인 물질문화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탈북민들은 이같은 정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지방에 있는 공장과 기업소도 문을 닫는 판에 어떻게 새 공장을 건설하느냐는 겁니다. 다시 탈북민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조충희 씨] ”지방 기업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기업도 돌리지 못하면서 새로 기업을 개변한다는 게, 지금까지 못했는데 지금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2024년 북한 경제는 지난해 보다는 호전될 전망입니다. 또 북러 밀착과 북중 무역 등으로 북한 경제는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는 한 북한의 구조적 경제난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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