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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상회담 관련 대일 접촉 공개 거부…전문가 “미한일 결속 약화 의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자료사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자료사진)

북한이 일본의 태도를 비난하면서 양국 정상회담과 관련한 어떤 접촉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핵 보유국 지위에 기초한 협상만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미한일 결속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6일 담화를 통해 북일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관심사가 아니”라며 “일본과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의 25일 발언을 언급하며 “일본은 새로운 북일관계의 첫 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담화를 낸 지 하루 만에 거부 입장을 공식화한 겁니다.

김 부부장은 25일 담화에선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전달해왔다며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일본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었습니다. 일본에 자신들의 핵 미사일 개발을 간섭하지 말고, 이미 해결된 납치자 문제도 거론하지 말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김 부부장의 이런 담화가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북한 측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북한의 요구조건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또 담화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최근 정상회담 관련 발언은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사상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의식하고 있는 일본 수상의 정략적인 타산에 북일관계가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일본의 대화 의지에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입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보면 기시다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국내 정치적 입장을 위해 활용하려는 차원에서 북한에 접근했다고 생각을 할 것이고 북한 입장에선 그게 좀 괘씸하다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어요.”

김 부부장은 앞서 한국과 쿠바 수교 직후인 지난달 15일에도 담화를 내고 “일본이 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갈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김 부부장이 잇단 담화를 통해 정상회담과 관련한 양국 접촉과 진행 과정을 공개한 것은 2018년과 2019년 실패한 미북 정상회담의 교훈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협상 과정을 공개하고 의제 등을 공식화하지 않으면 정치쇼의 대상으로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있다는 겁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또 일본이 자신들에게 먼저 접근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미한일 대북 공조에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김 부부장의 담화에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일본이 이렇게 정치적 이용을 위해서 자신들에게 접근했다는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한미일이 가졌던 결속 이런 부분에 사실상 흠집, 흠결을 냈다고 보여지는, 한편에선 균열까지도 북한은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홍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함께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일본을 통해 미국과 한국에 각인시키려는 계산도 들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강경한 담화로 미뤄 일본은 그동안 물밑접촉을 통해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과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의제로 삼겠다는 태도를 고수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북한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일본을 소통창구로 북한 핵과 도발 문제 등을 다루고자 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김현욱 교수입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한국, 미국, 일본 간에 북일 접촉에 대해서 이미 사전조율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아마 일본은 접촉하고 대화를 한다면 당연히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 이런 것들이 지역정세에 미칠 영향 이런 것들을 다루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이런 접촉 거부 선언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추진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발표 하나하나에 코멘트하는 것은 삼가겠다”면서 “북일 간 여러 현안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그동안 거듭 설명해 온 바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야시 장관이 말한 일본 정부 방침은 2002년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북한과 납치, 핵, 미사일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일 평화선언엔 국교 정상화 회담 추진과 과거사 반성에 기초한 보상, 납치 등 유감스러운 문제의 재발 방지,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관계 구축 등 4개 항이 담겼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를 통해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을 받길 원하고 일본은 북 핵 위협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며, 김 부부장의 담화로 이런 양국의 과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적대관계가 유지되는 이웃국가 사이이기 때문에 일본으로서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 또 이웃국가로서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는 거죠.”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북한과의 접촉을 놓고 일본 내에서 외교적 실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고 일본이 북한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여건도 아니라며, 협상 재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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