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여 동안 북한 남포 유류 항구에 최소 18척의 유조선이 입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포엔 새로운 유류 탱크가 등장하고 서해상에선 유엔 제재 대상 북한 유조선의 운항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8일 북한 남포 유류 하역시설 일대를 촬영한 ‘플래닛 랩스(Planet Labs)’의 위성사진에 길이가 약 70m인 유조선이 보입니다.
이 유조선은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남포 유류 하역 부두 5개 중 한 곳에 선체 가운데 부분을 밀착시켰습니다.
불과 나흘 전인 4일까지만 해도 이 부두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 유조선이 어딘가를 항해한 뒤 돌아와 유류를 하역하고 있는 정황으로 추정됩니다.
반대로 4일까지 바로 옆 부두에 정박해 있던 길이 85m 유조선은 8일 자 위성사진에선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는 남포 유류 항구를 드나드는 유조선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VOA가 과거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남포 유류 항구에는 해빙이 끝난 3월에만 최소 8척의 유조선이 입항했습니다. 이후 4월엔 7척, 5월엔 8일 현재 3척의 유조선이 들어왔습니다.
지난 70여일 동안 최소 18척의 유조선이 남포 유류 항구에 정박한 것입니다.
이 일대에 구름이 끼거나 위성사진이 촬영되지 않은 날을 감안하면 실제로 이곳을 드나든 유조선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과거 보고서에서 유조선 1척이 실을 수 있는 유류 양을 선박에 따라 1만에서 3만 배럴로 추정해 매년 북한에 반입된 정제유를 집계했습니다.
이를 3~5월 남포를 드나든 유조선 18척에 적용하면 이 기간 북한이 확보한 정제유는 최소 18만 배럴에서 최대 54만 배럴이라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7년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정제유 수입 한도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했습니다. 북한이 연간 수입 한도를 초과하는 정제유를 반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러시아가 올해 북한에 제공한 정제유 양이 이미 유엔 안보리가 정한 한도를 넘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녹취: 커비 조정관] “Russia has been shipping refined petroleum to the DPRK. Russian shipments have already pushed DPRK inputs above mandated by the UNSC. In March alone, Russia shipped more than 165,000 barrels of refined petroleum to the DPRK."
특히 “지난 3월에만 러시아가 북한에 16만 5천 배럴이 넘는 정제유를 보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3월 남포를 출입한 유조선 8척이 운송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8만에서 24만 배럴의 정제유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 양입니다.
남포에서 새로운 유류 저장탱크도 확인됐습니다.
앞서 VOA는 지난 2월 플래닛 랩스의 위성사진을 분석해 남포 유류 탱크 지대 남쪽 한 지점에 원형 형태의 굴착 작업 흔적 2개가 보인다고 보도했는데, 이중 1개에 유류 탱크가 완공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새 유류 탱크의 지름은 약 20m로 측정됐습니다.
또 바로 옆 부지에서도 계속 변화가 포착돼 이 자리에 조만간 또 다른 유류 탱크도 들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은 최근 몇 년 사이 이 일대에 유류 탱크 여러 개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2022년 초엔 지름 23m, 높이 10m 안팎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탱크가 완공됐으며, 같은 해 11월엔 지름 30m의 탱크가 발견됐습니다.
또 지난해 5월엔 바로 옆 부지에 지름 12~15m의 탱크 2개가 신설되고, 10월엔 북부지대에 유류 탱크 3개가 들어선 모습이 위성사진에 찍혔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이 일대에 유류 저장 시설을 꾸준히 확충하면서 2018년까지 약 20개였던 유류 탱크는 현재 35개로 늘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북한은 올해 초 유조선 접안 시설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북한이 유류 탱크와 유조선 접안 시설을 확충하는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최근 러시아로부터 연간 한도를 초과하는 유류를 공급받는 북한이 유류의 비축 역량을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7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연간 한도를 초과하는 모든 이전은 불법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와츠 전 위원] “Any transfer above the cap should be considered illegal… And so that designation seems no longer possible, since the P5 can no longer agree at the Security Council, and specifically at the DPRK Committee, the 1718 Committee.”
이어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나라가 안보리 특히 대북제재 1718 위원회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만큼 더 이상의 제재는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미국 등 ‘같은 생각을 가진’ 나라가 독자 제재 등의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선박의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 따르면 북한 유조선인 유선호는 현지 시각 9일 새벽 현재 북한과 중국 사이 해역에서 중국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앞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2018년 3월 유선호를 포함한 선박 27척을 전격 제재했습니다.
당시 안보리는 유선호가 선박 간 환적을 통해 불법으로 유류를 건네받았다며, 각 유엔 회원국이 유선호에 대한 자산 동결과 입항 금지 조치를 모두 취하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유선호가 북한 해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유선호를 포함한 유엔의 제재 대상 북한 유조선은 지난해부터 중국 근해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엔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안산1호 등 최소 5척의 북한 유조선이 러시아에서 유류 제품을 선적했다는 영국 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동해에선 얼마 전까지 선적 미상이었던 유조선이 북한 깃발을 달고 이동 중인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림바호라는 이름의 소형 유조선은 한반도 시각 8일 오후 9시경 한국 울산에서 동쪽으로 약 176km, 일본 시마네현 하마다시에서 북서쪽 약 92km 지점에서 남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잠깐 드러낸 뒤 사라졌습니다.
마린트래픽은 이 선박이 외부로 발신한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토대로 림바호가 북한 선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현재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등록 자료에는 이 선박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북한 깃발을 달았지만 이후 2012년까지 키리바시 선적으로 운항됐고, 그 후로는 줄곧 선적 미상으로 남아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원래부터 북한 소유였던 림바호가 키리바시와 선적 미상 상태를 거쳐 다시 북한 깃발을 달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혹은 2010년대 다른 나라로 이전된 림바호가 다시 북한 소유로 되돌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중고 유조선을 다시 구매한 것이라면 이는 안보리 결의 위반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6년 채택한 대북 결의 2321호를 통해 유엔 회원국이 북한에 선박을 판매하거나 북한 선박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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