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직무정지로 한국 정정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중 두 나라는 외교장관 간 전화통화를 하는 등 소통을 재개했습니다. 중국은 대중 강경책을 공언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의 관계 전환을 적극적으로 꾀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한국과 중국 외교장관이 최근 한국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첫 통화를 가졌죠?
기자) 그렇습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조태열 한국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24일 전화통화를 가졌습니다.
조 장관은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 직무정지로 빚어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 체제에서도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한국의 국내 정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며 “중국은 내정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한국 국민이 국내의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왕 부장은 또 “최근 공동의 노력으로 양국 관계가 발전 추세에 있다”고 평가하며 “한중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양국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조 장관은 내년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국이 APEC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고 했고, 왕 부장은 한국의 APEC 개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지 입장을 재차 표명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APEC 계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을 추진 중입니다.
이 때문에 왕 부장의 이번 입장 표명은 일단 양국 간 긍정적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진행자) 한국의 정정 불안에도 중국이 한국을 관리하려는 의중이 엿보이는 대화로 보이는데요. 중국의 의도에 대해선 어떤 분석이 나오나요?
기자) 중국은 한국의 대통령 탄핵 정국이 한반도 정세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번 외교장관 통화와 관련한 중국 측 발표문을 보면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전병곤 박사입니다.
[녹취: 전병곤 박사] “한중 관계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 안 좋았었는데 특히 올해 들어서 한일중 정상회담 이후 한중 관계가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내년 정상회담 얘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갑자기 탄핵이 되니까 한중 관계를 관리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불안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양국 외교 수장들이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자는 데 합의한 점은 그래도 주목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김흥규 소장은 중국이 러시아와의 군사 밀착을 등에 업은 북한이 도발에 나설 가능성과 윤석열 정부의 심상치 않은 대북 강경책을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요인으로 보고 민감하게 주시해 온 것으로 분석하면서, 이 때문에 비록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이긴 하지만 정세 관리 차원에서 한국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진행자) 김 기자, 최근 한중 관계가 약간 호전되는 조짐을 보였다곤 하지만 미한일 안보협력 체제에 적극적이었던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국 측의 부정적 인식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지금의 윤 대통령 탄핵 국면을 중국은 어떻게 바라볼까요?
기자)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2차 탄핵소추안 가결 전인 지난 12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큰 불만을 표명한 데서 보듯 한중 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시 담화에서 국가안보 중요성을 언급하며 중국 스파이설을 제기했고,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표명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홍 박사는 그러나 중국은 윤 대통령의 탄핵 여부, 그리고 상대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제1야당으로의 정권 교체 여부 등 한국 내 정치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과의 기존 소통 채널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한국의 향후 정국 전개 여부에 따라선 한중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여지가 있거든요. 중국 입장에선 현 상태를 부정적으로 방치하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향후 유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서라도 일단 현재 관계는 유지하면서 향후 적극적으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을 좀 확보한다 이런 측면이 아마 중국의 주요 입장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진행자) 중국은 대중 강경정책을 추구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에 맞서 미한일 협력체제의 약한 고리로 보는 한국을 최대한 자기편으로 끌어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기자) 왕이 부장은 조태열 장관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앞서 한중 양국이 공급망 안정을 공동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왕 부장은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한중 무역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을 환영하고 한국 측과 협력을 강화해 세계 생산 공급망의 안정성과 원활한 흐름을 공동으로 유지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추후 미한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질 경우 중국이 그 틈새를 공략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그러나 한국은 경제와 안보 두 측면 모두 미국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기 때문에 설사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하는 제1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에 비해 중국과의 협력 공간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탈미 기조 하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안보 면에선 북한 핵이 목덜미를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건 중국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점에서 한국 입지라는 건 사실은 굉장히 선택지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별로 없는 쉽지 않은 맥락이 있을 것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진행자) 중국은 일본과도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죠. 한국은 물론 일본과도 소통을 강화하는 양상인데 어떤 전략적 셈법이 있다고 보는지요?
기자)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을 방문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25일 왕 부장과 만나 양국 안보 분야 의사소통을 위한 외교·방위 분야 고위 당국자 간 ‘안보대화’를 개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또 내년 이른 시기 왕 부장의 일본 방문도 추진해 ‘중일 고위급 경제대화’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와야 외무상은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도 예방해 지난달 페루 리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양국 정상회담 때 재확인한 ‘전략적 호혜관계’에 입각해 인적교류와 경제 협력을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리 총리는 이 자리에서 “중국은 일본과 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고 양국 관계의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며, 실용적 협력으로 더 많은 새 결과를 얻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흥규 소장은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양자 협상을 통해 실익을 극대화하려는 트럼프 당선인의 외교 방식에 대응해 중일 두 나라 관계도 일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자신의 어떤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전략인데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서 오히려 이 소다자 특히 한중일 이런 협력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게 중국의 복안입니다.”
이와야 외무상은 왕 부장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기 철폐, 간첩법으로 구금된 일본인 석방 등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 군이 동중국해 등에서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데 대해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이와야 외무상은 또 일본은 타이완 상황과 중국의 최근 군사력 배치 확대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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