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국 내 탈북 청소년들의 삶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이 교육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 탈북 과정에서 박힌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남산에 자리한 여명학교는 70여명의 탈북 청소년들이 어렵사리 꿈을 가꿔가는 보금자리입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들의 시련도 한층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문을 열어 현재 고교 학력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는 한국 내 다른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한 달 이상 새 학기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차원에서 모든 초중고교의 개학을 연기한 때문입니다. 하지만 탈북 학생들에겐 한국의 여느 학생들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 학교의 절반이 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이 가운데 10명 정도는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탈북 청년들입니다.
기숙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차원에서 정부 조치에 따라 폐쇄된 상태입니다.
이 학교 조명숙 교감은 학생들에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기숙사를 잃어버린 이들 학생들은 한국 정부가 지원한 지방의 소형아파트에서 월 40만원 정도의 생계지원금으로 아파트 임대료를 포함한 의식주를 해결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왔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그나마 작은 일자리마저 빼앗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조명숙 교감의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습니다.
[녹취: 조명숙 교감] “가장 염려가 되는 건 우리 아이들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그리고 여기서 사회에 나오기까지 굉장히 많이 갇혀 살았잖아요. 근데 이 아이들이 사는 임대아파트라는 게 9~14평 정도로, 굉장히 좁은 공간에서 계속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빨리 국면이 해소돼서 아이들을 접촉해서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런데 더 신경을 쓰고 싶은거죠.”
여명학교 학생들의 상당수는 탈북 과정에서 중국 등지에서 긴 체류기간을 거치며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탈북 이후 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육체적인 고통도 컸지만 정체성 문제로 정신적인 상처 또한 깊은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미뤘던 초중고교 개학을 오는 9일부터 순차적으로 하되 온라인 수업방식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조명숙 교감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기자재 마련은 가능한 상황이지만 문제는 학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없는 아이들이 있는데다 혼자 지내는 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하면 안그래도 빠듯한 학교 살림이 더 힘들어질까도 걱정입니다.
조명숙 교감은 학교 예산의 40%를 통일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지만 나머지 60% 정도를 차지하는 후원금이 벌써부터 줄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조명숙 교감] “교회들은 헌금이 줄었다, 그리고 개인과 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후원을 못하거나 줄이거나 이런 상황이라는 전화들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운영비뿐만 아니라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탈북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는 민간단체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성통만사)의 1대1 탈북 학생 맞춤형 교육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1대1 탈북 학생 맞춤형 교육은 공부에 뜻이 있는 탈북 학생들을 위해 자원봉사 대학생들을 활용해 1대1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현재 20여개 팀이 운영 중입니다.
이 단체 남바다 사무국장은 한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고 문화적으로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탈북 학생들의 배움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방안으로, 특히 한국사회에서 중시되는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이 90%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남바다 사무국장]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의 영어를 배워야 하는 학생들도 많고, 그리고 학원을 간다고 해도 이 학생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 한국 학생하고 다르기 때문에 이 학생들한테 맞춰진 수업을 해줘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1대1로 수업을 해주고 있고 다른 학생들 눈치를 보지 않고 수업할 수 있는 것 때문에 더 좋아하고 있어요.”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대학생들 중엔 외국인 학생들이 절반 가량입니다. 이 단체의 인턴십 프로그램 정보를 보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남바다 사무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과 함께 자원봉사 외국 대학생들이 갑자기 자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지면서 1대1 맞춤교육팀의 절반 가량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말했습니다.
[녹취: 남바다 사무국장] “한국에서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때 당시엔 한국이 위험하니까 돌아오라고 했었고요, 그 이후엔 본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지니까 모든 학생들 다 집으로 돌아와서 있어라, 그런 정책 때문에 오히려 한국이 좀 안전할텐데 다른 나라들이 다 위험하니까 그냥 일단 다 돌아오라 이런 정책 때문에 한국에서 가기 싫은데 돌아가야 하는 학생들이 생겼죠.”
또 종전엔 외국 자원봉사자들이 90일짜리 관광비자로 한국을 오가며 일하는 게 가능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차단을 위한 해외 입국자 2주 간 격리 조치로 그럴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조명숙 교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사회 최대 취약계층 중 하나인 탈북 청소년들이 교육으로부터의 소외는 물론 삶 자체가 더욱 피폐해질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