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의 대남 적대 기조를 통해 충성심 고취 등 내부 결속을 도모하고 있다고, 미국의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제재 완화와 경제 협력 재개를 위해 미-한 동맹 약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다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당국은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를 강력히 비판한 이후, 대남 사업을 대적 사업으로 전환한다고 선포하는 등 연일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은 12일 개인 명의의 첫 담화를 발표하면서, 남북 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당국에 있어서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처럼 지난 4일 김여정 담화가 발표된 뒤 북한 대내 매체에는 대남 비난 논조의 글이 게재되고 있으며, 대남 군중 시위도 잇따라 열리고 있습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북한 관영 매체가 ‘최고 존엄’ 사수와 사회주의 사상 옹호 등을 강조한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국장] “The major internal objectives is to reaffirm loyalty around the North Korean purity. This is a very common refrain in North Korean ‘rectification’ efforts. And that is to eliminate any potential differences that could emerge, that would undermine political loyalty.”
북한의 중요한 내부적 목표는 사상의 순결성을 둘러싼 충성심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스나이더 국장은 이는 사회주의 경로에서 이탈한 것을 바로잡는 ‘시정 노력’에서 보이는 매우 흔한 일로, 정치적 충성심을 저해할 수 있는 잠재적인 차이점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같은 움직임을 촉발한 배경 중 하나로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보였던 대미 접근법에 관한 정치적 논쟁이 여전히 잔류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마크 피츠패트릭 연구원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재등장과 권한이 확대된 김여정 등 지도부 변화에 정치적 함의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북한 일부 지역에서 최근 몇달 간 쌀값 상승을 목격할 수 있었다면서, 이동∙무역 제한 등으로 야기된 북한 경제난을 대남 적대시 사업을 초래한 변수 중 하나로 지목했습니다.
[녹취: 피츠패트릭 연구원] “So, it's not for certain, but probably there is concern in the leadership that people might be dissatisfied over inflation and rising costs and travel restrictions and so forth. And so to distract public attention from these kind of concerns, the leadership has created a crisis with South Korea.”
북한 지도부는 주민들이 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비용 증가, 이동 제한 등에 불만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대남 적대시 정책을 가중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한국 문재인 정부에게 대북 제재 완화와 남북 경협 재개를 위한 압박 수위를 높이며 미-한 동맹 균열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에 미국이 선호하지 않을 일을 진행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미-한 동맹을 약화시키는데 있어 현 시점을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녹취: 베넷 연구원] “When the interests tend to diverge, which they do over North Korea, then it's harder to maintain an alliance. And so I think he views this as a critical time for trying to undermine the alliance.”
베넷 연구원은 북한이 미-한 동맹 균열을 위해 과거에 비해 정교한 노력과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이 한국 정부의 의사 결정과 여론을 조작하려 시도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남북 대화 재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간절함이었다고 풀이했습니다.
현재 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가 대화 재개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리비어 수석부차관보] “What I see happening here is that Seoul has basically opened the door to an effort that North Korea is making to try to manipulate both public opinion and to manipulate South Korean government decision-making here by saying that it is so eager, and as I said, even so desperate to restart dialogue…”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한국 정부가 요구 사항을 수용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미국이 아닌 한국을 압박 전략의 선행 표적으로 삼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ICAS) 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대응 방안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반면 한국은 좀 더 쉬운 상대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나이더 국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대남 강경책을 통해 북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제거하는 능력을 한국으로까지 확장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남 강경 노선 선회가 향후 강경 대외 정책 실행의 서막, 위기 고조의 전주곡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네덜란드 레이던대학의 크리스토퍼 그린 교수는 북한이 대남 적대 사업을 통해 11월 미국 대선 직후에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도록 상황을 설정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장은 미-북 관계에 종속돼 있는 남북관계, 그리고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대미 외교가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하고 제시된 대외 정책 방향의 연장선에서 대남 강경책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없는 한국 정부와의 대화를 진행하는 것보다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이를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고스 국장은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 개발과 경제 발전을 통한 정권 생존과 김씨 일가 집권 영속화라는 전략적 목표 아래 외교와 벼랑 끝 전술을 펼쳐왔다면서, 현재는 벼랑 끝 전술로 향하고 있는 시기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What I am saying is the move in the hard line against South Korea, it is not a strategic move. It is a tactical move, which means it is short term. Until it is proved not useful anymore, they will continue to go in that direction. But if they begin to open up the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I guarantee you the inter-Korean dialogue will improve.”
하지만 북한 당국이 대남 강경 노선을 선택한 것은 전략적 움직임이 아니라 단기적인 전술적 움직임일 뿐이라며, 강경 노선이 유용하지 않다고 증명될 때까지 지속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고스 국장은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풀리면 남북 관계도 개선될 것으로 장담한다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지다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