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6.12 미-북 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핵 억제력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가 오히려 악화된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이상의 치적 선전용 보따리는 주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리선권 외무상은 12일 6.12 미-북 정상회담 2주년 담화를 내고 미국이 앞으로도 북한에 대한 장기적 위협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힘을 키우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이 담화에서 리 외무상은 2년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두 해 전 한껏 부풀어 올랐던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은 오늘날 악화 상승이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회담 이후 지난 2년 간 양국의 관계 개선이 아닌 악화에만 매달려 왔다고 책임을 돌리면서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는 대가 없이 치적 선전을 위한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또 북한 최고 지도부와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가 유지된다고 해서 실제 양국 관계가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고도 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핵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등을 배치한 점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말하는 신뢰 구축은 변함없는 대북 고립압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변함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담화는 지난달 24일 북한 매체에서 보도됐던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 결과를 거듭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담화는 당시 북한 최고지도부가 조성된 대내외 정세에 부합하는 국가 핵발전 전략을 토의하고 미국의 장기적인 핵전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했다는 내용을 담아 핵무기 개발을 지속할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박사는 비교적 절제된 표현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지만 비핵화 합의 노력 자체를 뒤엎겠다는 데까지 나간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조 박사는 즉각적인 도발을 암시한 대목은 없지만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전까지 미국의 태도에 따라 전략 도발에 나설 여지도 남겨둔 내용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성렬 박사] “미국의 태도가 변화가 없다면 자신들의 전략 핵 무력 강화는 계속될 것이다, 이런 겁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도발할 것이다 이런 뉘앙스는 아니지만 그 가능성까지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담화가 지난달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의 핵 억제력 강화 방침을 거듭 언급한 대목에 주목했습니다.
박 교수는 리 외무상의 담화는 결국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 카드를 갖고 나오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북한 문제가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선 트럼프 대통령의 레드라인, 즉 임계치로 여겨지는 전략적 군사 도발 가능성도 내비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한국 내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흑인 사망 시위 등으로 대선을 앞두고 악재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을 활용해 유리한 협상을 이끌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강 부원장] “그러니까 이대로 계속 갈 수 없는 것 아니냐, 이대로 갈 수 없으니까 딜을 하자는 그런 딜에 대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좀 더 강경하고 우위에선 입장에서 북한의 속내가 드러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 리 외무상의 이번 담화는 대내 매체인 `노동신문’에는 실리지 않았습니다. 11일 남북 연락채널을 모두 차단한 북한 행보에 실망했다는 미 국무부 대변인 발언에 “부질없는 망언”이라며 반발한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의 언론 문답도 `노동신문’에 싣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는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최근 연일 `노동신문’에 실은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는 북한이 남북관계와 달리 미국에 대해서는 협상의 장기적 교착 상황 속에서도 반응을 지켜보며 협상 여지를 남겨두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 입장에선 한국 때리기는 분명히 계속 가는 것이고, 그것은 명확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것이고 반면 미국과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는다 일종의 투트랙이죠.”
박 교수는 북한이 지난해 말 천명한 `정면돌파’ 노선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한국에 비난을 집중하고 미국에 대해선 긴장을 서서히 고조시키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