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봉쇄됐던 북-중 교역이 재개될 조짐들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무역통’으로 알려진 리룡남이 중국 주재 북한대사로 공식 부임해 향후 역할이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5일 ‘무역통’으로 알려진 리룡남 주중 북한대사의 공식 부임 소식을 전했습니다.
`노동신문'은 북한의 “특명전권대사가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봉정했다”면서 리 대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보내는 ‘따뜻한 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리 대사는 지난 2019년 내각부총리와 정치국 후보위원까지 올랐던 고위급 인사로, 지난 2월 신임 주중 대사로 임명됐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 등으로 그동안 신임장 제정을 미뤄왔습니다.
무역상과 대외경제상을 역임한 리 대사의 부임은 향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 사태에 따른 국경봉쇄로 경제가 한계상황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도 접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의 자력갱생은 완벽한 고립이 아니고요, 필요한 일부 부품을 사회주의 우방으로부터 받으면서 자기들 힘으로 나가는 게 자력갱생이거든요. 필수품에 대한 북-중 무역 재개가 없이는 북한 경제는 사실상 붕괴 수준으로 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보면 경제통인 리룡남 주중 북한대사의 복선은 결국 중국에 의존한 자력갱생 노선으로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거든요.”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박사는 리 대사의 부임은 단순히 북-중 교역 활성화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자력갱생에 필요하지만 대북 제재로 반입이 어려운 전략물자 확보를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게 고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고명현 박사] “소비재 수입이었다면 특별히 무역 전문가를 주중 대사로 임명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 북한이 지금 국산화를 위해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 계획들이 있는데 거기에 기계류가 많이 해당되거든요. 그런 부분은 제재 때문에 조달이 굉장히 어렵죠. 그런데 그것을 조달할 수 있는 원천이 중국밖에 없기 때문에 아마 무역통이 중국대사가 된 것은 전략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신종 코로나 사태로 봉쇄됐던 북-중 교역의 재개 조짐들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습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신문은 중국이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로 지난해 폐쇄했던 북한과의 국경을 다시 개방할 것으로 보인다고 14일 보도했습니다.
중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랴오닝성 정부는 최근, 오랫동안 지연돼 온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 대교의 개통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랴오닝성 정부는 또 지난달 대교 개통에 필요한 교량 안전검사 입찰공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랴오닝성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이 신압록강 대교의 개통 임박을 암시한다고 전했습니다.
신압록강 대교 건설 프로젝트는 10년 전 시작돼 당초 2014년 개통 예정이었지만, 본체가 완성된 후 개통이 지연돼 왔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신압록강 대교는 북한쪽 인접도로 공사가 올초 끝나면서 언제든 개통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며, 북한 보다는 중국이 개통에 더 적극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이상숙 교수는 가치동맹을 표방하는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대중 공세 양상이 과거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와 비슷하다며, 중국은 당시에도 그랬듯 북한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천안문 사태 때 미국과 EU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외교를 많이 축소시키는 경향을 보였고 그 때 중국 외교가 택한 것은 주변국 외교 강화였어요. 그래서 지금도 중국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고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고.”
조한범 박사는 그러나 신압록강 대교는 왕복 4차선 도로가 깔려 있는데 신종 코로나 확산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는 북한이 차량통행을 허용할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북-중 교역 재개 조짐은 북한 내부에서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북한 내부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북한과 중국의 회사와 단체, 개인이 지난달 중순부터 물자교류 계약을 속속 체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꿀이나 약초, 건강식품, 미술작품 등을 넘겨주고 그 대가로 식량과 비닐박막, 비료, 농약 등을 들여오는 거래들이 많다고, 조 소장은 전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중국과의 교역에 필요한 약초라든지 건강식품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생산지에서부터 교류를 할 수 있는 국경역 있는 데로 물자들이 다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평양이나 중앙 쪽에서 무역일꾼들이 세관이 자리잡고 있는 국경도시로 들어오고 있다고, 사업을 위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조한범 박사도 북한 당국이 중국과의 인적 교류나 차량 통행을 당장 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철도와 선박 등 방역 통제가 용이한 운송수단에 대해선 부분적으로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의주비행장에 중국으로부터의 물자 유입을 소화하기 위한 새 물류창고를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조중우의교의 철도에 한해서 이달 중 봉쇄를 풀려는 움직임들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