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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억지력’ 강화 카드, 전략적 목표 위한 접근법 재조정...대미 메시지 전달”


북한은 18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북한은 18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북한이 핵 억지력 강화를 공표한 것은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기존의 접근법을 재조정한 결과라고, 미국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다만 핵 억지력에 관한 수사는 대미 메시지 전달 목적일 뿐 전략적 목표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지다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우리는 미국이 가해오는 지속적인 ‘핵 위협’을 제압하기 위한 우리의 힘을 계속 키울 것이며, 우리가 선택한 이 길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북한 외무성 군축평화연구소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25일 발표한 보고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북한 당국이 이처럼 핵 억지력 강화 의지를 공식적으로 공표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연말부터 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장기적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핵 억제력의 경상적 동원 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1월 1일)]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립장에 따라 상향조정 될 것이라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습니다.”

리선권 외무상도 지난 6월 담화에서, 5월 열린 당 중앙군사위 4차 확대회의에서 최고지도부가 “미국의 장기적인 핵전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하였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 19일, 중앙군사위원회 5차 확대회의와 ‘비공개 회의’에서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기 위한 핵심 문제들을 토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4월 전원회의에서 ‘병진 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언하며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선언한 뒤, 핵 개발, 핵 억지력에 관한 공공연한 언급을 삼갔던 지난 몇 년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이로 인한 대내외적 목표 달성 실패에 따른 결과론적 선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전략적 목표’가 변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접근법의 조정’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들버리국제학연구소(MIIS)의 조슈아 폴락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적으로 대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보는 수준까지 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폴락 연구원] “I think the answer is that they want the United States, in particular, to know what they are doing because they believe that, with enough of the threat to the United States, they can compel Washington to rethink the nature of its relations with North Korea, to rethink what the North Koreans call the hostile policy.”

북한의 이런 결정은 충분한 위협으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재고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입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미한정책국장은 북한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미-북 관계가 적대적으로 유지되는 한 핵 억지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결심을 했다며, 이것이 북한이 현재 추구하는 ‘안보우선 전략’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근본적 전략 목표’와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 아니라 ‘접근법의 조정’일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미국과 북한이 서로 핵 억지 능력을 갖고 있는 점을 미국이 인정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국장] “The other big macro framing factor that is important is that North Korea is trying to get the U.S. to recognize and adjust its approach from one in which the U.S. has always had a nuclear threat against North Korea in its back pocket to one in which there is a kind of mutual deterrent capability.”

북한의 핵전쟁 억지력 언급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메시지를 미국에 보내기 위한 전술적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핵심 전략 목표와 이를 실행하기 위한 북한의 의사 결정은 수 년 전에 이뤄졌다며, 최근 북한의 핵 억지력 관련 수사는 미국과 한국을 시험하고 조정하려는 ‘일련의 전술적 움직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 “The rhetoric comes and goes. … But the core strategic goals and the decision making to pursue those goals took place many years ago. That was a strategic decision. But what you have been seeing for the last several months is a series of tactical moves that are required by the North Koreans as they try to test and manipulate both Seoul and Washington.”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핵 보유를 이용해 북한에 유리하도록 한반도 내 ‘세력균형 (balance of power)’을 효과적으로 바꾸고, 미-한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도 목표의 일부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 개발을 멈춘 적이 없으며, `병진 노선’의 포기를 선언한 적도 없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북한 당국이 병진 노선으로의 회귀를 공표하지 않았고 승리를 선언한 ‘병진 노선’이라는 문구를 더는 사용할 수 없지만, 현재 추구하는 방향은 병진 노선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장은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변화가 없으면 핵 개발에 집중할 것이고, 이런 움직임이 미국에 어려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략적 메시지’를 주로 전달한다고 말했습니다.

미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적국분석국장.
미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적국분석국장.

[녹취: 고스 국장] “I think primarily what they are doing when they talk about this openly is to send strategic messages to the United States.… It is tactical in its nature than it is strategic in terms of it is something that is always there in the background, but it is not something that is a fundamental change of what they have been doing for decades now.”

다만 공개적 메시지는 북한이 수 십 년 간 지속해 온 핵 개발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전술적’ 성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스 국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없는 현 시점에서 체제의 ‘정당 (legitimacy)’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 문제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케이토연구소의 에릭 고메즈 국방정책국장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핵∙경제 병행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더 안전한 행동방침’이라고 판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고메즈 국장] “I think it really creates some issues on the domestic front from North Korea, not on the level of Kim's legitimacy or collapse or anything like that. But it does create political problems at home.… Kim felt the need to take a harder line and re-emphasize the nuclear program for national defense and regime security from outside threats.”

고메즈 국장은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4월 당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노선에 집중할 것을 공표한 이후 원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국내적으로 정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방과 정권 안정성 보호를 위한 핵 프로그램을 재강조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핵 개발 집중 재공표를 통해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지 않았던 일부 북한 엘리트층을 달랠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핵 억지력 강조는 김 위원장이 핵 프로그램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군 장성들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주는 수단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패트릭 전 부차관보] “Emphasizing the nuclear program may be a way to reassure the country's generals that the leadership is on the right track. … I think North Korean military leaders, who have devoted their lifetime to improving North Korea strategic deterrence capabilities, may have been unhappy with the way Kim Jong Un was talking about denuclearization even if he didn't mean it.”

하지만 미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움직임이 미-북 핵 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지난 몇 년 동안 미-북 협상은 김 위원장의 ‘명시적인 비핵화 목표’에 의해 촉진돼 왔다며, 핵무기를 강조하는 과거로의 회귀는 미국의 북한 핵 포기 설득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나이더 국장은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재개했을 때 이전에 존재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메우기 어려운 간극과 의제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 평화연구소(USIP)의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지다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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