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한 민간단체가 대중국 정책, 미군 재배치 셈법과 한반도 문제 등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을 제언한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미국의 전직 관리들은 정책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동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책임있는 국정 운영을 위한 퀸시연구소’가 29일 ‘포괄적이고 균형적인 역내 질서: 미국의 새 동아시아 정책’이라는 제목의 정책 제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퀸시 연구소, 새 동아시아 정책 제언 보고서 발표
“트럼프 대 중국정책 실패…북한이 역내 최고 위협”
이 연구소의 마이클 스웨인 동아시아프로그램 국장과 제시카 리 선임연구원, 레이첼 오델 연구원이 저자로 참여한 이번 보고서는 역내에서 미국의 관여 전략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군사정책 일변도였던 기존 정책들을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대 중국과 동아시아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가 공언했던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과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구성한 집단안보체제 ‘쿼드’는 조율된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보고서는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경제적 위협이 미국과 동맹에 심각한 우려 사안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군사 일변도 정책에서 탈피해 경제와 외교적 수단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국은 아직 국제 질서나 미국에 실존적 위협 (Existential Threat)이 되지 못하며, 향후 세계 제패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있지만 전략적 경쟁에 초점을 둔 미-중 관계는 부실한 정책을 만들어냈다는 설명입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전쟁 발발 가능성은 중국의 부상보다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노력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했으며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 중국, 북한 전략이 어떻게 구현될지 현 시점에서는 불확실하다며, 다만 동맹 강화를 통해 다원적인 접근법을 취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했던 태세는 다소 완화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바이든 정부 관리들, 역내 미군 재배치 고민 부족”
“역내 주둔 미 지상군 대규모 감축 당장 시작해야”
그러나 공화, 민주당 뿐 아니라 새 행정부에 발탁된 많은 관리들 역시 새 시대 동아시아 전략 재편을 두고 비판적이거나 창조적인 고민을 매우 적게 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역내 군사우위가 사라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주둔 미군과 동맹군의 재편에 대한 어려운 질문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면서 향후 미국의 역내 정책은 통제나 지배력 중심에서 중국에 대한 거부 중심의 접근법으로 전환하고, 역내 주둔 미국의 지상군을 상당한 수준으로 줄일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어 중국이 구사 중인 반접근/지역 거부전략(A2/AD)의 일부를 역도입해 중국이 도련선 내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미국과 역내 동맹들이 방공과 해안방어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역내 미군의 지상군과 항공모함 등이 배치된 전진 기지를 대규모로 감축해 중국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에 대한 취약성을 보완하고, 전략적 심층성과 기민성에 기반한 공중, 해상 전력의 분산 배치를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분산배치 전략은 당장 시작해야 하며 10년에서 20년동안 점진적으로 관리하고 중국의 도발과 역내 안보 환경변화 추이를 고려하면서 보다 큰 규모의 미군 감축을 추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미한 상호방위조약, 대중견제 전환 활용 안돼”
“한국군 현대화 투자 상당…방어책임 이양 준비돼”
동시에 미국이 각 동맹들과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의 독자성을 받아들이고, 한국의 경우 북한의 도발 대처에 방점을 두고 중국을 견제하거나 대처하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다른 역내 어떤 동맹국들과 비교해 이미 군 현대화에 상당히 투자해 자국 방어에 보다 큰 책임을 이양 받을 준비가 된 만큼, 미국은 향후 북한과의 평화협상 진전 상황과 연계해 한국과 주한미군의 지상군 감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과 종전선언 서명이 현실적…체제보장 포함해야”
대북 외교정책과 관련해선 북한 체제의 보장과 양 당사자 간 의회 차원의 인준을 포함한 이행 합의가 선행될 때만 북한이 의미 있고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한반도 비핵화의 궁극적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유엔군 사령부를 대표하는 미국, 북한, 중국이 종전선언에 서명하는 것이 중단기 관점에서는 현실적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전력과 관련 교리 개발에 제한을 가하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예방에 초점을 둘 것을 권고하면서, 장기적으로 평화통일 과정은 남북 정부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조율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존 퀸시 애덤스 6대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이 연구소는 석유재벌 찰스 코크와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2019년 설립했으며, 미국이 군사 중심정책을 지양하고 외교에 초점을 둔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독려해왔습니다.
손튼 전 차관보 대행 “중국, 오판·악용 가능성”
로이 전 대사 “미 의회 내 군비축소 경계 기류”
한편 이날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진행한 화상대담에 참석한 수전 손튼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은 미국의 주요 외교정책에서 대 중국 정책은 급격한 방향성의 변화를 겪은 분야라면서, 토론 과정 없이 이런 변화를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향후 미국 정부가 관련 정책 제언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이 같은 움직임을 미국이 약해졌다고 오판해 악용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물었습니다.
[녹취 : 손튼 전 차관보 대행] “If we try to make these adjustments that you're talking about, the Chinese would see that as weakness and move out to take advantage of American weakness...”
스테이플턴 로이 전 주중 대사도 이날 대담에서 의회 내 공화당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처에 따른 국방예산 삭감을 우려하고 있다며, 외교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으로 전환할 경우, 예산을 재배정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 로이 전 대사] “If we try to shift away from overly military focus policy in the Asia Pacific area and give diplomacy a greater role, is the Congress prepared to fund such an approach? ”
이에 대해 보고서 저자인 마이클 스웨인 국장은 러시아, 중국과 경쟁 외에도 협의할 분야가 더 많다며, 계속 군사적 수단에 의존한 억지력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동맹 역시 양자택일을 취하는 미국의 정책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VOA뉴스 김동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