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새로운 제재 결의안 2270호를 채택하는 데는 57일이 걸렸습니다. 역대 최장 기록인데요, 미국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제재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4차 핵실험부터 새 결의안 채택까지 과정을 함지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지난 1월 6일, 북한이 전격적으로 4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유엔 안보리는 같은 날 즉각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녹취: 로셀리 대사] “The SC strongly condemned this test..”
1월 안보리 의장국인 우루과이의 엘비오 로셀리 대사는 언론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이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1874호, 2094호와 비확산체제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는 안보리의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보리가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 신속히 제재 결의안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며 제재에 동참할 뜻을 밝히면서, 결의안 채택이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핵실험 직후, “중국은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습니다.
안보리가 추진하는 대북 결의와는 별도로 미국과 한국, 일본 정부는 독자적인 제재 마련을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미 하원은 1월7일 대북 제재 강화법안인 ‘2015 북한 제재 이행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발표했고, 한국 정부는 1월8일부터 남북 군사분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북한에 대한 기존 제재를 대폭 강화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각각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도발에 맞서 국제사회가 강력하고 단합된 대응을 취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특히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1월7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이 실패였다며, 기존의 입장을 바꿀 것을 촉구했습니다.
케리 장관에 이어 한국의 윤병세 외교장관도 이튿날 왕이 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의 필요성에 합의했습니다.
이 시점에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와 미국 정부 관계자 등은 ‘VOA’에, 3~4주 안에 결의안이 채택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8일만인 1월14일, 한국과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제재 문제에 대한 적잖은 견해차가 드러났습니다.
당시 한국의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부장은 이전과 ‘차별적인’ 대북 압박을 주장하며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지만,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는 대북 제재가 ‘합당한’ 대응이 돼야 한다며 ‘온도 차이’를 보인 겁니다.
이 때부터 새 결의안에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사만다 파워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1월26일 ‘미국과 중국이 새 결의안에 대한 합의에 근접했느냐’는 질문에 ‘노’라는 대답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미-중 간 입장차는 1월27일 베이징에서 열린 두 나라 외무장관 회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두 장관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며 의견을 조율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녹취: 케리 장관] “Let me…”
케리 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강력한 대북 결의안의 필요성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제재 수위를 놓고 견해차가 있었음을 밝혔습니다.
[녹취: 왕 부장]
왕이 부장 역시 미국이 추진하는 고강도 대북 제재 결의안을 겨냥해, 제재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대북 제재 결의안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합니다. 바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는 1월29일 사드가 안보와 국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드 배치 문제를 공론화 했습니다. 이후 미-한 양국이 실무 논의를 시작하며 속도를 높이고, 중국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미-한-중 3국 사이에 사드 문제가 결의안 채택에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북한이 2월7일 또다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은 또다른 변수가 됐습니다. 국제사회가 핵실험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다시 도발적 행동을 한 북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기 시작한 겁니다.
특히 한국 정부는 2월10일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결정합니다. 한국 통일부 홍용표 장관의 발표입니다.
[녹취: 홍용표 한국 통일부 장관] “이제 우리 정부는 더 이상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우리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로 하였습니다.”
미 의회도 2월12일 ‘2016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 법안’이라는 이름의 초강력 대북 제재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어 18일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는 등 북한 옥죄기에 속도를 높입니다.
일본 또한 북한 국적자나 선박의 일본 입국 금지 등을 포함한 독자적 대북 제재 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 무렵 중국 정부의 입장에 조금씩 변화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관영언론들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라는 사설을 냈고, 왕이 외교부장은 대북 제재와 6자회담 병행 추진을 주장했습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강력한 대북 제재를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에서, 대화를 일종의 조건으로 포함시키는 쪽으로 한 발 물러난 겁니다.
이 때문에 2월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케리 장관과 왕이 부장의 회담은 한 달 전 베이징 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이날 케리 장관과 왕이 부장은 한 목소리로 두 나라가 결의안 초안에 합의를 이뤘으며, 조만간 결의안이 통과된다는 사실을 공표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2월25일 곧바로 전체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결의안 초안을 회람하고 표결이 임박했음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검토 시간’을 요구하고,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치면서 결국 결의안 채택은 2월을 넘기면서 3월2일에야 이뤄졌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57일 만이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