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대북 의료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요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최근 북한 의료진을 교육했습니다. 인요한 소장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대북 인도적 지원 활동이 남북 간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안소영 기자가 인 소장을 만나봤습니다.
[녹취: 인요한 소장] “일맥상통한 것은 인도적인 지원은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그 자체가 또 신뢰를 (만드는 거거든요) 북한 사람들도 알아요. 굉장히 정치적으로 미국과 안 좋을 때 “이렇게 선생들이 어려운 시기에 온 걸 더욱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 많이 들었어요. 북한에서.”
결핵 퇴치를 위해 지난 1997년부터 지금까지 29차례 방북한 인요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지난 주말 이뤄진 미-한 정상회담과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3자 회동에 앞서 방한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대북 지원단체들 간 만남이 이뤄진 데 대해 고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비건 대표와 면담한 ‘유진벨 재단’ 스테판 린튼, 인세반 회장의 동생인 인 소장은 북한 주민을 위한 식량, 의료 지원은 북한의 정치 상황과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두 사안을 결합하는 것은 기독교 사상이 바탕인 미국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녹취: 인요한 소장] “미국 정책에 원수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 나그네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병들면 치료해 주고, 심지어 감옥살이 하면 감옥도 방문하라는 예수님의 명이 있어요. 그것은 친구냐, 적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미움이 주민에 대한 연민까지 앗아갈 수 없다면서 북한 군부와 주민을 ‘도매’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인 소장은 최근 중국에서 평양과 원산, 함흥 출신의 30대 초반의 젊은 북한 의료진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등 성인병과 암에 대한 의료교육을 진행하면서,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찬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인요한 소장] “제일 크게 느낀 것은 (배움에) 배가 고팠어요. 너무너무 배우고 싶고, 너무너무 머리들이 좋고. 머리가 좋은 그것만 가지고는 안돼요. 알고 싶어해야 해요. 눈이 그냥 초롱초롱해요.”
인 소장과의 한국, 더 나아가 북한과의 인연은 선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왕조 시절이던 1895년, 외증조부인 유진벨이 전라도 전주에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5대가 한국에 살며 북한 결핵 퇴치 사업과 의료장비 지원 관련 사업을 펼쳐온 겁니다.
유진벨 재단의 인세반 회장뿐 아니라 또 다른 두 형 모두 현재 북한에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 소장은 한국형 앰뷸란스의 최초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1984년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큰 병원으로 이송할 마땅한 구급차가 없어 택시에서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또 첫 방북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40여 년 동안 한국과 북한에서의 의료봉사 공을 인정받아 ‘호암상’을 받은 어머니 로이스 린튼 씨가 상금을 주며, 앰뷸란스 한 대 더 만들어 북한에 기증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북한에 똑같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 어머니의 소망이었다고 인 소장은 설명했습니다.
이듬해인 1997년 형이 운영하는 유진벨 재단의 도움으로 북한에 앰뷸란스를 기증했고, 이후 유진벨 재단의 사업 방향도 일부 조정됐습니다.
[녹취: 인 소장] “유진벨 재단이 1995년, 식량 지원으로 우리 형님이 시작했는데, 1997년에 결핵으로 전환했어요. 북쪽의 요구에 따라서, 어머니가 북측 지도자들에게 말하자면 감동을 줬어요. 오찬이 만찬으로 바뀌고, 무슨 국빈대접을 받았어요. 이성적인 이유가 아니고, 말하자면 미망인이 앰뷸란스 한 대를 들고 왔는데, 아들이 남쪽에서 만들어 기증하고, 북쪽에도 하나 가져왔다. 그래서 뭐하시는 분이냐, 결핵 퇴치 사업을 한다. 우리 애들이 결핵을 앓아서 결핵을 너무 잘 안다.”
당시 만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린튼 씨의 설명을 듣고 바로 북한에서도 결핵 사업을 진행해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인 소장은 대북 인도적 지원의 투명하고 공정한 배분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보다 현명한 접근법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의료 지원은 식량과 달라 모니터링 문제가 그리 크지 않지만, 유진벨 재단은 북한 곳곳을 찾아갈 수 있는 일종의 ‘이동의 자유’가 있어 지원 장소를 반드시 방문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자신도 여러 차례 이에 합류했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인 소장] “우리는 동해안, 서해안, 원산, 함흥, 청진, 해산, 강개만 빼고 다 갔어요. 원산, 남포, 사리원, 해주에 검진차 다 들어갔고 전 다 가봤습니다. 한 번 씩 간 것이 아니고 여러 번 가봤어요.”
인 소장은 최근 조성된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 속에 이뤄지고 있는 북 핵 협상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문구를 상기시키며, 무작정 감성에 치우치기 보다는 굳건한 미-한 동맹과 튼튼한 한국의 국방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북한과 협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선교사 3대 후손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던 해군장교 출신인 아버지의 가르침이 인생의 길잡이라는 인 소장.
적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고, 모두가 평등하며, 다를 뿐이라는 ‘정신적 유산’을 남겼다고 전했습니다.
[녹취:인 소장] “아들아, 그들은 다르다. 우리보다 우수한 것도 아니고 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르다. 평등하게 생각하라. 한 500번은 들은 것 같아요. 절대 누구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차별대우 하지 말고, 위 아래 없고 같다. 같은 데 인생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 아버지가 주신 가장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
서울에서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