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설리번 보좌관, 대북 접근법 한국과 이견 언급...전문가들 "종전선언 과도한 기대 제동"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이 26일 백악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 접근법에서 한국과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종전선언을 둘러싼 미-한 간 논의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종전선언 논의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6일 언론브리핑에서 최근 미-한 북 핵 수석대표간 논의가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다면서도 대북 접근법에 있어 양국이 입장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종전선언이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할 촉매제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순서와 시기, 조건 등에서 한국과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답한 겁니다.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은 지금껏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미국의 사실상 첫 공개 언급이라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미국과 한국은 외교, 안보, 정보 수장간 회동은 물론 북 핵 수석대표 간 최근 두 달 새 6번의 만남 등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 재개 방안을 놓고 집중적인 논의를 해왔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그 과정에서 종전선언 협의가 모종의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들이 나오고 이에 따라 설리번 보좌관이 이번에 과도한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낸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북한이 비핵화 관련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종전선언만을 별도로 추진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미국의 기본 입장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설리번의 발언은 지금까지 동맹의 제안이기 때문에 존중 차원에서 들어줬던 게 지나치게 한-미가 문안 조정을 한다거나 한-미간에 마치 상당한 의견 접근이 되는 것처럼 내용이 나오는 데 대해서 이를 일정 정도 미국 차원에서 입장 정리를 하지 않으면 계속 오해될 소지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일단 이를 굉장히 정중한 외교적 어법으로 정리하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이 미-북 협상 재개의 입구로, 정치적 상징성만을 갖는 선언으로 하자고 미국을 설득하고 있지만 미국 입장에선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임을 설리번 보좌관이 우회적으로 표명했다는 분석입니다.

아무리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이라고 해도 일단 종전선언이 현실화 하면 주한미군 주둔과 유엔사령부 존치, 미-한 동맹 위상 등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촉발될 수 있고 자칫 국제적 논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게 미국 측의 우려라는 겁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종전선언이 단순히 북한 문제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신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지금 만약 종전이 돼버리면 유엔사가 존치할 법적 근거가 없어지는 거에요. 중국 측에서도 계속 그것을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고 그러면 미국 입장에선 뭔가 이런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엔사의 법적 조건 등 고민을 해야 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미국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큰 이유가 되는 거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은 커녕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 고도화를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먼저 종전선언에 나서기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정상간 만남을 전제로 하는 종전선언은 바이든 행정부가 실무협상으로부터 문제를 풀겠다는 이른바 ‘바텀업’ 방식과도 배치된다며, 설리번 보좌관이 순서와 시기, 조건 등 여러 측면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한 것은 그만큼 종전선언에 대한 미-한 양국의 입장차가 복합적이라는 얘기라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계속 고도화하고 도발을 하는 시점에서 종전선언을 한다, 미국이 북한을 더 이상 적대국으로 하지 않는다고 선포하는 것은 북한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을 정당화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북한의 핵 보유의 정통성을 주는 그런 효과가 있는 거죠.”

한국 정부는 27일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은 삼가면서 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외교와 대화를 우선시하는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향후 종전선언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있는 협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앞서 26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종전선언이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촉발하거나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한국 정부도 그런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 실장은 그러나 신뢰가 없고 대화가 오래 중단된 상태에서 만나 이야기할 소재로 종전선언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며 비핵화 협상으로 가는 입구로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미-한 간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연내 남북정상회담 같은 돌파구가 없으면 종전선언 논의의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금년 말이 지나게 되면 문재인 정부 임기 최종 말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종전선언을 도출하거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도 탄력을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적어도 남북정상회담이 돌파구로서 금년 내 성사돼야 어느 정도 문재인 정부 평화 프로세스가 진전되는 것이지 금년이 지나면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중요성이나 의미가 부분적으로 퇴색될 수 밖에 없고.”

홍민 박사는 설리번 보좌관의 이번 발언으로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도가 한풀 꺾일 것이라며 북한이 태도를 바꿔 종전선언을 위한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관련 논의도 점차 힘을 잃어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