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에 대한 한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의 반응이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핵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의 우위를 과시하면서 미국과의 담판 과정에서 한국을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게 북한의 의도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을 포함해 지난 1월 한 달 새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안보 불안이 고조된 한국에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여야 유력 후보들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후보인 윤석열 후보는 1일 인천 강화도 최북단에 위치한 강화평화전망대를 찾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를 포함한 중층적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해 수도권과 경기 북부 지역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실히 지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윤석열 후보] “평화는 구걸하거나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뒷받침되어야 우리가 바라는 자유, 평화, 번영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윤 후보 측은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 2천만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드 포대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경북 성주에 배치된 기존 사드 포대는 사거리가 200km에 불과해 수도권 남단까지만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집권여당인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도 필요 없다는 사드를 중국의 보복을 감수하며 추가 설치하겠다는 건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후보는 “전쟁 나면 죽는 건 청년들이고 군사 긴장이 높아지면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가 더 악화된다”며 “전작권 환수는 반대하면서 선제타격 주장으로 군사적 긴장만 높이는 건 대통령 후보가 할 일이 못 된다”고 각을 세웠습니다.
윤 후보는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그는 “선제타격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민주당 측에서 안보 위기를 표를 얻는데 활용한다는 이른바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윤 후보는 “선제타격은 예방공격과 다른 것”이라며 “공격을 받았을 때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명백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자위권 행사로서 하는 것이지 먼저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실용 외교정책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행한 연설에서 “층간소음 같으면 이사 가버리면 되는데 북한은 피할 길이 없다”며 “뛰지 말라고 감정 상하게 하고 욕하면 더 할 것이므로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대해 여야 후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대선 결과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과거 한국의 주요 선거에 임박해서 보인 행동들이 선거 결과에 미쳤던 그런 영향력을 이번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의 최근 도발도 기본적으로 교착 국면의 현 정세를 크게 흔들려는, 미국을 겨냥한 압박이지 한국은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다만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통해 핵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의 우위를 과시하면서 향후 미국과의 담판 과정에서 한국의 차기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하려는 일종의 길들이기 행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한국이 예를 들어서 강하게 나온다든지 하면 일단 북한으로서도 그걸 상대를 해야 되는 문제니까 그래서 아예 한국이 이것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힘의 대결로 가면 결국 한국은 전쟁을 하자고 할 순 없잖아요. 뭔가 풀어야겠다 그러면 결국 한국이 레버리지가 없으니까 미국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유화적으로 가야 된다는 쪽으로 한국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되는 거죠.”
한국 국방연구원 출신 김진무 숙명여대 교수는 북한이 남북협력을 지향했던 문재인 정부와의 지난 5년간 경험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 정부 역할의 한계를 인식했을 것이라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는 북한에게 큰 관심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북한의 달라진 시선을 지난 2007년 12월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열린 노무현 한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간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2007년 당시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 사업이 진행 중이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에 강경한 보수세력인 이명박 후보 당선을 저지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겁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대한민국이 자기 의지대로 북한하고 할 수 있는 여지는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매우 적을 것이다 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거에요. 그러면 일단 대한민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지 상관없다라는 부분이 하나 있고.”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여야 후보의 반응은 선거 승리를 위해 북한의 도발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서로에 대해 극단적인 논리로 공격하는 것은 북한의 심리전에 휘말리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야당 쪽에선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강조하고 있고 여당 쪽에선 그렇게 되면 전쟁이다 그러니까 결국 극단적으로 분열 상황을 보이고 있거든요. 이것은 나아가선 남남 갈등 한-미 이간으로 연결되는 거거든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의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달리 외교안보 문제가 핵심 이슈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북한도 결과에 큰 관심이 없는 선거라며, 사드 추가 배치나 선제타격론 같은 예민할 수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전술핵 미사일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북한에겐 별 자극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