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 집권 여당과 제1야당 후보들은 미-중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한국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나가야 할 지를 놓고 뚜렷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재인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대조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5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전 본부장은 북한 비핵화의 전체 프로세스에서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해 비핵화 협상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입구로 여기는 반면 미국은 비핵화 협상의 최종 결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 본부장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 말고는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의 첫 항목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굳이 이를 따로 떼서 선언을 해야 할 경우엔 이에 상응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이도훈 전 본부장] “사실 선언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비핵화가 이뤄져서 그 맥락 속에서 종전선언이 아 지금쯤은 종전선언을 할 때가 됐구나 하고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에 앞서 14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한국의 ‘중앙일보’가 공동 개최한 포럼에서도 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김성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외교안보정책본부장은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김 본부장은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근처에도 가지 못한 상황에서 전쟁이 끝났다거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선언하는 게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에 어느 정도까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대단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한 본부장]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하는 거죠.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서 전쟁이 끝났다고 미리 선언을 해버리는 게 비핵화에 도움이 되는 건지, 앞으로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게 비핵화에 도움이 되는 건지 저는 둘 다 별로 설득이 안 된다 이 말이죠.”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측인 위성락 선거대책위원회 실용외교위원장은 비핵화 진전을 위해선 평화 트랙도 함께 작동해야 하고 종전선언은 평화 트랙 가동을 위한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위 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할 것인지 방법론이라며 종전을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많겠지만 적절한 표현을 통해 ‘비핵 트랙’과 ‘평화 트랙’이 상호보완적으로 움직여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위성락 위원장] “북한 핵 문제를 수십 년 협상을 해본 결과 우리 모두가 무엇을 알게 됐냐 하면 북한 비핵화를 진전시키려면 비핵 트랙과 경제 부문만 갖고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비핵 트랙과 동시에 평화, 안전보장, 신뢰구축 이런 트랙들이 같이 섞여 들어가야만 진전이 있다 이런 것을 알게 된 거죠.”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위치에 대해선 양측 모두 미-한 동맹 쪽에 더 무게를 실었습니다.
위 위원장은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동맹에 미치지 못하는 동반자 관계”라고 규정했습니다.
또 “가치 측면에서도 미국은 한국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고 한국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달성한 유일한 나라가 되기까지 미국이 돕고 지원했다”며 “미국과 가깝게,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 간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에 대해서도 “이재명 후보는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쿼드와 어떤 형태로든 지금보다 더 많이 협력해야 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왔다”며 “다만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한반도 평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미ㆍ중 경쟁 구도 속에서 미-한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증진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미국과의 동맹을 중심축으로 중국과 상호존중에 입각한 협력 관계를 확대, 심화시켜나가는 게 윤석열 외교의 핵심”이라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극도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인해 신뢰를 떨어뜨리는 외교를 하지 않는다는, 전략적 명확성의 출발선에서 새 정부의 외교가 전개돼야 한다”며 “특히 신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동맹 이상의 파트너십을 강화해나감으로써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무엇을 해줄 수 있고, 해줄 수 없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여야 대선 후보들의 미-중 대결 구도 속에서의 외교 정책 기조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르다며 특히 북한 문제가 결부되면 정책적 차이가 크게 드러난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야당 같은 경우엔 북한문제에 우선적으로 올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중 간 관계에서 한국이 어떻게 포지셔닝을 할까를 고민한 후에 그 틀에서 북한문제를 바라볼 가능성이 크죠. 반면에 여당의 가장 핵심은 거기는 민족주의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북한 문제를 우선해서 거기에 준해서 미-중 간 관계를 볼 가능성이 크죠.”
실제로 여야 대선후보 진영 간엔 북한이 2017년 11월 이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한 데 대해 보상해줘야 하는 지 여부를 놓고 입장차가 한층 두드러졌습니다.
위 위원장은 “북핵 문제는 북한의 안보 딜레마, 상호 불신, 상대에 대한 위협 용도 등 복잡한 의도와 목적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대처도 복합적이어야 한다”며 “따라서 대화와 협상 등 인센티브와 함께 제재와 압박도 함께 써야 한다는 게 이 후보의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협상은 유연하게 하되, 북한이 합의를 파기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분명하고 적절하게 지적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반면 김 본부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는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보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다만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북한이 일단 대화에 나와 실질적 비핵화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나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