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북한 정권 붕괴라며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고 이를 공개해 미국의 비핵화 협상 촉구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행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목적이 북한 핵 자체를 제거해 버리자는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핵을 내려놓게 하고 자위권 행사력까지 포기 또는 열세하게 만들어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9일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조성해놓은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형세 하에서, 더욱이 핵 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또 미국이 사상 최대의 제재 봉쇄를 통해 핵 포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적들의 오판이고 오산”이라며 “백날, 천날, 십년, 백년을 제재를 가해보라 하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는데 비례해 자신들의 힘은 계속 강화되고 미국이 부닥치게 될 안보 위협도 정비례하게 증대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이와 함께 자신들의 핵무력 정책을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채택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무력 정책의 법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북한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며 “절대로 먼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비핵화 협상이라는 기존 틀에 대해 미국이 근본적으로 태도를 전환하라고 요구한 연설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한미가 비핵화 원칙을 계속 고수하고 있고 비핵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북한이 이것에 확고하게 선을 그은 거거든요. 그래서 오늘 내용의 핵심은 나 이제 비핵화 안 하니까 거기에 대한 대화는 없어, 향후에 나한테 그런 말 꺼내지도 마, 그리고 오늘 내가 내놓은 법령은 그것을 차단하기 위한 거니까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 이게 핵심 요지거든요.”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도 김 위원장이 직접 핵무력 정책의 법제화를 공개함으로써 미국의 비핵화 협상 요구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김 위원장이 제재로 인한 고통을 언급하며 사실상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기존 입장을 확인한 수준이고 핵무력 정책의 법제화도 이런 자신들의 태도를 강조하기 위한 엄포성 조치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김 위원장이 전승절 연설에서 대남 메시지를 냈다면 이번엔 미국에 대한 메시지를 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차원을 종합해 보면 큰 틀에서 기존 입장을 유지하겠다 그리고 먼저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 한 북한이 협상에 나갈 일은 없다는 거고요.”
‘조선중앙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핵 무력정책 법령은 1항부터 11항까지 번호를 붙여 차례로 핵무력의 사명과 구성,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 핵무기 사용 결정의 집행, 핵무기의 사용 원칙, 핵무기의 사용 조건 등을 담았습니다.
특히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를 다룬 3항은 “핵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며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절대적 권한을 명시했습니다.
이어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 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지휘부가 유사시 타격을 받게 되면 그것이 재래식 공격이든 핵 공격이든 핵 공격 작전계획이 자동 시행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홍민 실장입니다.
[녹취: 홍민실장] “대외적으론 김정은이 저 모든 통제권을 갖고 있다, 잘못 건드리면 자동발사 조항이 있네, 물론 이걸 보는 관련국들이 겁을 먹고 이런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실상 저 조항들을 의식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죠.”
법령은 ‘핵무기의 사용 조건’에 대해선 총 다섯 가지 경우를 명시했습니다.
핵이나 기타 대량살상무기(WMD)에 의한 대북 공격, 지도부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또는 비핵 공격, 주요 전략 대상에 대한 치명적 군사적 공격 등인데 여기서 이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라고 적시했습니다.
실제 공격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북한이 스스로 임박했다고 판단하면 핵을 쓸 수 있도록 사실상 선제 핵 공격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분석입니다.
이와 함께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있는 경우와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도 포함시켰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김정은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조건에서든 자기가 사용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사용할 수 있도록 이렇게 조건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죠. 핵 사용을 정당화하고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위한 그런 불순한 속내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이런 공세적인 핵 독트린을 법령을 통해 구체화, 정교화함으로써 향후 전술핵무기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핵무력의 전투적 신뢰성과 작전운용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게 전술핵 운용공간을 부단히 확장하고 적용수단의 다양화를 더 높은 단계에서 실현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핵무력 법령은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야합해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이 나라들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다분히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나선 한국을 겨냥한 내용이라는 관측입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이번 시정연설은 핵무력에 대해 ‘억지전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사실상 ‘선핵 노선’을 천명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그전엔 경제 및 핵 병진 노선이었거든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핵을 먼저 앞세워서 핵을 보유함으로써 단순히 국가안보적 측면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자신들의 앞으로의 만년대계, 인민들의 복지와 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핵이 필요하다 그런 식의 논리들을 계속 얘기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한편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런 강경 행보에 대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9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며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은 미한 동맹의 억제력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북한 스스로의 안보를 저해하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북한이 핵 사용 위협을 중단하고 한국 정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조속히 호응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