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 제재회피 계속…사이버 공격으로 수억 달러 탈취”

한 때 한국 깃발을 달았지만 이제는 대북제재 핵심 선박이 된 '뉴콘크'호가 타이완 우추섬 인근 해상에서 포착됐다. 자료=유엔 전문가패널

북한이 이미 올해 중순 연간 허용치에 육박하는 유류를 반입했다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밝혔습니다. 각종 불법 수단을 동원해 유류와 석탄을 계속 거래한다는 건데, 한 때 한국 깃발을 달았던 선박이 이런 활동에 가담해왔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북한은 또 사이버 공격으로 올해에만 수억 달러를 탈취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전문가패널은 선박을 이용한 북한의 불법 유류 수입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7일 공개한 중간 보고서에서 “유엔 회원국 1곳으로부터 2022년 1월부터 4월 사이 북한 유조선 16척이 27차례에 걸쳐 남포 시설로 정제유를 반입하는 장면을 담은 위성사진을 제공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사진을 통해 북한이 45만 8천898배럴에 달하는 정제유를 남포로 유입한 것으로 파악했는데, 이는 북한에 허용된 연간 반입량의 90%에 해당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2017년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이 반입할 수 있는 유류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고, 각국이 매월 이 수치를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1년 치 허용량을 거의 다 채웠다는 설명입니다.

반면 공식 보고가 이뤄진 정제유 수입분은 올해 7월 기준으로 50만 배럴의 약 8.15% 수준이라고 밝혀, 실제 반입량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VOA는 중국이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보고한 유일한 나라이며, 보고된 대북 정제유는 아스팔트 재료인 석유역청과 윤활유 등 비연료성 유류에 불과하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8.15%라는 공식 수치마저 실제 대북 정제유 반입량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환적지로 떠오른 북한 조선만, 즉 서해 일대에서 포착된 선박 간 환적 장면도 보고서에 담겼습니다.

북한 남포 인근 해상에서 선박 간 환적을 하는 선박 3척. 이 중 가운데 선박은 크레인이 실린 바지선이다. 자료=유엔 전문가패널

전문가패널은 선박 2~3척이 맞닿은 장면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3척이 맞댄 경우엔 이 중 1척이 크레인용 바지선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이 서해에서 석탄 등 무거운 물체를 환적한 사실을 시사한 것입니다.

전문가패널은 초도 인근에서 벌어진 선박 간 환적이 특히 올해 5월 여러 차례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VOA가 이 일대에서 환적 의심 활동을 포착한 시점과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앞서 VOA는 올해 4월부터 최근까지 ‘플래닛 랩스(Planet Labs)’의 위성사진을 분석해 북한 초도 인근에서 최소 18건의 선박 간 환적 의심 행위를 포착한 바 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중국 인근 해상에서 벌어지는 환적 활동에도 주목했습니다.

특히 과거 북한 선박이 자주 출몰했던 닝보-저우산 해역에 더해 황화 정박지와 보하이, 롄윈강 등에서도 석탄 하역이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한 때 한국 깃발을 달았지만 이제는 대북제재 핵심 선박이 된 '뉴콘크'호가 타이완 우추섬 인근 해상에서 포착됐다. 자료=유엔 전문가패널

‘뉴콘크(New Konk)’호가 여전히 국제해상을 돌아다니는 장면도 보고서에 담겼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작년 9월 뉴콘크호가 다른 선박의 해상업무식별번호(MMSI)를 달고 타이완 우추섬 인근 해역에서 북한 서해상으로 이동한 항적을 남겼다고 밝혔습니다.

뉴콘크호는 전문가패널이 지난 3년간 가장 많이 주목한 유조선으로, 공해상 선박 간 환적과 허위 식별번호 발신 등 각종 불법 활동에 연루돼 왔습니다.

현재 뉴콘크호의 선적은 불분명하지만, 본격적으로 불법 활동에 가담하기 전까진 한국 깃발을 달았던 한국 선박이었습니다.

뉴콘크호는 2019년 한국을 떠나면서 차항지를 ‘북한’으로 기재했지만, 아무 제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북한의 중고 선박 구매가 이어지고 있다며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총 14척의 선박이 북한 소유로 다시 태어났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선박 판매자들을 통해 매각 선박의 최종 목적지와 사용자 정보는 물론 선박 브로커의 신원과 이전 거래 기록 등을 확인할 것을 회원국들에 권고했습니다.

이번 보고서에는 가상화폐 거래소 등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사이버 공격 사례 역시 비중 있게 소개됐습니다.

전문가패널은 북한이 비디오 게임 ‘액시 인피니티’를 구동하던 ‘로닌 네트워크’에서 이더리움의 17만 3천600 이더(ETH)와 2억 5천500만 달러 등 당시 기준 약 6억 2천500만 달러를 탈취한 사건을 소개했습니다.

아울러 올해 6월 23일 블록체인 기술기업 하모니가 유사한 사이버 공격으로 8만 5천800 이더(ETH)를 탈취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현금으로 미화 1억 달러가 넘는 액수입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패널은 북한 내 사치품 유입이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다며, 북한 내에서 발견된 고급 전문가용 카메라와 주류, 커피 등을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또 북한 관리들이 2015년에서 2021년 사이 생산된 일본 미쓰비시의 SUV 차량 ‘파제로’를 사용하는 점에 주목하면서, 해당 차량은 북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판매된 제품으로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패널의 주요 임무는 대북 제재 불이행 사례 조사, 제재 이행 관련 정보 수집과 분석 등입니다.

미국과 한국,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러시아, 싱가포르 등 8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됐으며, 매년 두 차례 북한의 제재 위반 활동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위원회에 제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매년 8~9월에 발간되는 중간 보고서로, 올해는 370쪽에 걸쳐 다양한 사례를 담았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