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1일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며 과거사 갈등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협력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한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1일 서울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윤석열 한국 대통령]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하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약 5분간 읽어 내려간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자유와 헌신, 미래와 번영 등의 보편적 가치를 부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 핵 위협 등 위기를 극복하는데 미한일 3자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윤석열 대통령]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 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하여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
한국이 일제 치하에 있었던 지난 1919년 일어난 비폭력 봉기 운동이었던 3.1운동에 대해 윤 대통령은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며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되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특히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 세계 시민의 자유 확대와 세계 공동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며 “이것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그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3.1절 기념사에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등 한일 간 과거사 갈등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또 일본에 대한 사죄나 반성 요구로 해석될만한 내용도 포함되지 않아 한국 역대 정부의 3.1절 기념사와 사뭇 다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입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 그리고 미래가 더 중요하다 이런 것을 강조함으로써 이제는 일본에 대해서도 그렇고 한미일 협력에 대해서도 그렇고 상당히 선제적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니냐 이렇게 보여집니다.”
문재인 전임 대통령의 경우 지난 2018년 첫 3.1절 기념사에서 유관순 열사를 포함해 국내외 독립운동을 상술하고, ‘가해자’ 그리고 ‘반인륜적 인권범죄’ 등의 표현을 써가며 일본에 반성을 촉구했습니다.
이번 3.1절 기념사는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줄곧 밝혀온 현 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한일 간 강제징용 협상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일 당국 간 강제징용을 둘러싼 입장차가 많이 좁혀진 상태라면서 윤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이례적으로 전향적 평가를 담은 3.1절 기념사를 발표한 것은 현안 해결에 필요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굉장히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이만큼 일본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관계 개선에 아주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 이 의미는 이제는 일본이 이것을 받아서 할 수 있는 몫을 하라는 거죠.”
한일 외교당국은 현재 강제징용 배상과 일본 정부의 사과 등 해법을 놓고 협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기념사에는 북한에 대한 메시지도 빠져 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 핵 위협을 둘러싼 갈등과 위기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어서 이번 기념사가 대북 메시지 보다는 북한에 대한 대응 의지만 담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한미 군사훈련 그리고 한미일 3국간 군사훈련 이런 것들이 3월 중순부터 예정돼 있잖아요. 또 화해 협력 메시지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통해서 한반도 위기에 대응하는 게 최선이다 이런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고.”
임 교수는 이번 기념사가 글로벌 현안들과 북 핵 위협 대응 차원에서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일 간 갈등 현안에 대한 언급을 피했지만 과거사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국민들의 반일 정서가 빠르게 바뀌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북한 매체들은 3.1절을 맞아 일본을 맹비난하는 기사들을 내보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일본이 “범죄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과거 청산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해보려고 모지름을 쓰고 있다”며 “아무리 세기와 세대가 바뀌어도 반인륜 범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도 3.1절에 대해 “발톱까지 무장한 침략자들과는 무장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피의 교훈을 새겨줬다”고 언급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한일 대 북중러 진영 구도 속에서 북한의 일본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는 양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현 국제정세를 신냉전 구도로 아예 못을 박아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로 북한 외무성이나 김여정 담화나 북한 매체 논조가 신냉전 구조 쪽으로 완전히 흘러가고 있어요. 따라서 최근 일본에 대한 과거 식민지 지배, 과거사 이 문제를 부각시키는 흐름이 좀 더 가속화되고 있고요.”
전문가들은 북 핵 위협에 맞선 미한일 공조 강화 흐름을 억제하기 위해 북한이 한국 국민들의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일본 비난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