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미국의 기밀 문건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잇따라 유출되면서, 미국이 동맹국들을 감청해온 사실이 함께 드러나 외교관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매체들이 8일 보도했습니다.
최근 트위터와 텔레그램, 게이머들의 채팅 프로그램인 디스코드 등에 유포된 문건을 보면,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장 내 공격 계획과 역량 등을 상세히 평가하는 등 러시아 보안·정보기관에 깊이 침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담겨있습니다.
이 밖에 중국과 중동에 관한 정보,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관해 파악된 자료들도 들어있습니다.
같이 보기: 미국 기밀 문건 잇따라 유출...우크라이나 외 중국·중동 관련 자료 소셜미디어에 퍼져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들이 만들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에게 일일 정보보고 형식으로 전달한 기밀 자료들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는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한국·영국·이스라엘·튀르키예·아랍에미리트(UAE) 정부에 관한 내용도 있습니다.
미국이 적성국 외에 동맹국에 대해서도 첩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로써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졌다"면서 "미국의 비밀 유지 능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자아냈다"고 평가했습니다.
■ 한국산 탄약 문제
유출된 기밀 문건 가운데 적어도 2곳에서,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고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공급'할지에 관해 내부 논의를 진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습니다.
한국이 폴란드에 포탄을 수출하고, 폴란드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대안입니다.
얼마전 사임한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이 이같은 대화를 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한국 대통령에게 포탄 공급 압력을 가할 가능성을 놓고 한국 관리들이 우려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 한국이 미군에 155mm 포탄을 제공하는 논의가 진행된 사실이 지난해 11월 확인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미 국방부 “미한, 탄약 판매 논의…준비태세 요건 고려해 면밀히 평가”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고, 한국으로부터 재고를 채우는 방식으로 거론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독면, 방탄조끼, 의약품 등은 제공하지만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표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윤석열 한국 대통령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공급 없어"■ 도·감청으로 동향 파악
CIA가 작성자로 돼 있는 유출 자료 중에는 이같은 정보의 출처를 '신호 정보 보고(signals intelligence report-SIGINT·시긴트)'라고 적었습니다.
시긴트는 전자 장비로 취득한 정보입니다. 도·감청한 내용을 가리킵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 동향을 감청으로 파악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도청 사실이 공개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같은 주요 파트너 국가와의 관계를 방해한다"고 해설했습니다.
이밖에 유출 자료에는 이스라엘에 관해, 첩보기관 모사드 고위급 인사들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 방안에 항의하는 관리들과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같이 보기: 이스라엘 '사법개혁안' 반대 국방장관 해임■ 소셜미디어에 자료 퍼져
주로 지난 2월 생산된 기밀 문건들은 2월 말과 3월 초에 걸쳐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량 유출된 것으로 뒤늦게 파악됐고, 이달 6일과 7일에 이어 8일에도 유출 문건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6일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세부 계획이 담긴 기밀 문건 유포 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자료에는 미국 등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와 후속 지원 계획, 격전지 바흐무트 일대 상황, 봄철 대반격을 위한 우크라이나군 전력 강화 내역 등이 주로 담겼습니다.
같이 보기: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바흐무트 대반격 예고 "러시아군 지친 상태...크이우 지켰듯 기회 잡겠다"뿐만 아니라 중국·북한의 미사일 개발, 인도태평양 지역 미군 상황, 중동에 관한 정보도 들어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유출된 정보 대부분 진본 내용이 맞다고 언론에 설명했습니다. 다만 일부 자료에는 조작이 가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 전사자 수는 줄이고 우크라이나 전사자 규모는 늘리는 등 전황을 왜곡하는 방식입니다.
미 법무부는 국방부와 공조해 유출 경위 수사에 나섰습니다. 관계 당국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방해하려고 러시아 쪽이 훔쳐내 퍼뜨렸다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보고서 내용이 사진으로 유출된 것으로 봐서, 미국 내 연루자가 있을 개연성이 떠오르는 중입니다.
■ 크렘린 "미국·나토 개입, 주시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취재진의 관련 질의를 받고, 문건 유포에 관한 러시아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에 미국과 나토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정보활동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아울러 "(미국과 나토의) 개입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