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강조하며 사실상 대북 압박에 방점을 둔 통일부의 역할 변화를 직접 주문했습니다.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계획에 이례적으로 외무성을 통해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2일 김영호 장관 후보자 등 통일부 인사와 관련해 참모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통일은 남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더 잘 사는 통일,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간단체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원칙을 갖고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통일부 대북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점을 직접 밝힘으로써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과거 진보 정부와의 차별성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일방적으로 북한 정권에게 주기만 하는 그런 역할만 너무 부각되고 강조되고 그런 부분들이 바로 잡아져야 한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 할 말을 하고 도발을 했을 땐 강력하게 응징하고 제재하고 이런 조치들이 같이 이뤄져야 하는데 특히 15년 동안 했던, 햇볕정책을 폈을 땐 그게 안됐죠.”
관련 법령에 따르면 통일부의 업무 분야는 크게 통일과 남북대화, 교류, 협력, 인도 지원에 관한 정책 수립과 북한 정세분석, 그리고 통일교육과 홍보로 나뉩니다.
진보 혹은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통일부의 업무는 대체로 남북대화와 교류가 중심이었고 한반도 정세나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대북 압박의 시기에도 통일부의 이런 임무들은 일정 수준 중시돼 왔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그동안 한국 정부는 대북 지원을 포함한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 간 상호의존성을 확대함으로써 적대관계를 풀어보려는 정책적 방향성을 견지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차관은 그러나 북한의 핵 위협 등 적대 행위가 완화되기는커녕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통일부의 역할 전환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북한이 변하지 않고 핵을 개발했고 심지어 대한민국에 대해서 대적관계라고 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협력을 하면 북한이 변화해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보장된다 이런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런 접근 자체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북한 변화를 위한 접근을 해봐라 라는 거죠.”
윤 대통령은 지난주 단행한 부분 개각에서 ‘북한체제 파괴’ 또는 ‘김정은 정권 타도’와 같은 대북 강경 발언을 해온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고, 통일부 차관에는 미국통의 외교부 관료 출신인 문승현 전 태국 주재 대사를 임명했습니다.
같이 보기: 김영호 한국 통일부 장관 후보자 "통일부 역할 변해야...북한 인권 보편 관점 접근"윤 대통령이 직접 통일부 변화를 주문한 만큼 통일부 수장 교체와 함께 대대적인 인사와 조직 개편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승현 신임 통일부 차관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북한 비핵화의 여건을 조성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북한이탈주민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입니다.
[녹취: 홍민 실장] “북한 정세를 보다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알리는 정보 분야 그 다음에 북한 인권을 최대한 많이 조사하고 이를 통해 세련된 보고서를 내서 국내외에 알리는, 세번째는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업그레이드시켜서 통일 방안을 새롭게 마련하는 부분 이게 주요 역점사업이 될 것으로 보고.”
이런 가운데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계획에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은 지난 1일 담화를 내고 한국의 “그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해 통보받은 바 없고 알지도 못하며 또한 검토해볼 의향도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습니다.
현 회장 측은 4일 고 정몽헌 회장 20주기에 맞춰 방북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통일부에 대북 접촉신고를 제출했는데, 통일부가 이에 대한 수리 여부도 결정하기 전에 북한이 방북을 차단한 겁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인데다 특히 북한이 최근 해금강호텔 등 금강산의 한국 측 시설을 무단으로 철거하고 있어 북한이 현 회장의 방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애초에 희박했습니다.
하지만 담화 주체가 외무성이라는 점은 이례적입니다.
북한은 과거엔 남북관계 현안을 조국평화통일위원회나 통일전선부 등 대남기구에서 발표했습니다. 최근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발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와 관련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북한의 의도 등은 관련 동향을 지켜보면서 종합적으로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한국에 대해 분단 상태에 있는 동일민족이라는 특수성보다는 일반적 국가관계로 대하겠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북한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가 나옵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입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최근까지 당 규약 개정에도 보면 무력통일을 계속 주장하고 있고 북한 입장에선 이 통일이라는 문제가 일종의 국가 존립의 신화, 존재의 정당성의 문제였는데 이걸 이렇게 쉽게 다른 동향없이 포기한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남북한은 지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관계를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습니다.
홍민 실장은 그러나 남북한이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을 뿐 북한의 경우 최근 수년 간 ‘통일’이나 ‘우리민족끼리’ 등의 용어를 쓰지 않고 있고, 윤석열 정부도 국제사회 보편 원칙을 남북관계를 토대로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며 남북 쌍방이 서로를 대하는 관점이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속에서 사실상 국가 대 국가 논리로 가고 있다, 이것이 이제 북한이나 한국이나 말로 직접 표현하진 않지만 사실상 투 코리아(Two Korea)로 이미 가는 게 아닌가 이렇게 보여집니다.”
한편 현정은 회장 측은 북한이 입경을 거부한 데 따라 3일 방북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