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한 제재 위반 방조∙방관 사례 급증…해상∙무역 등 여러 분야 망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제재 대상으로 권고한 시에라리온 선적 '호콩' 호가 북한 남포항에 입항했다. 이 배가 소속된 회사의 주소지는 홍콩이었다. 사진 제공: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

중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각국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북제재 이행에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은 올해 들어 해상과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를 방조, 방관하며 국제사회 대북 압박 노력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북한의 제재 위반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새로운 선박을 구매할 수 없는데도 올해 들어 선박 20척 이상을 사들였습니다.

또 매년 상한선을 초과한 정제유를 불법 경로를 통해 반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엔 다른 나라 선박이 북한 선박을 관리하는 명백한 대북제재 위반 행위도 포착됐는데, 이는 과거에 흔히 볼 수 없던 일입니다.

그 밖에 북한은 올해에만 주류 수백 만 달러어치를 수입하며 유엔 안보리의 사치품 수입 규정 위반 논란까지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제재 위반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습니다.

최근 크게 늘어난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이 중국 정부의 묵인 혹은 느슨한 단속 때문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VOA가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통합해운정보시스템(GISIS)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북한이 구매한 중고 선박은 8일 현재 27척으로 이들은 북한 깃발을 달기 직전까지 모두 중국 선박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6년 채택한 대북 결의 2321호를 통해 유엔 회원국이 북한에 선박을 판매하거나 북한 선박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이런 행위를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으면서 30척에 가까운 중국 중고 선박이 북한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홍콩 회사 소유의 카메룬 선박 에브리스타호가 지난달 북한 남포 인근 해상에 머물고 있다. 자료=MarineTraffic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북한의 중국 중고 선박 구매 문제와 관련해 최근 VOA에 “중국이 북한으로의 선박 이전과 관련한 수문을 개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2020년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시도한 이후부터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대외 무역의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중국은 대북 압박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대북제재 준수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이 더 무겁다면서 대북제재 이행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상임이사국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했습니다.

[녹취: 윤석열 대통령]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이러한 안보리 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하며 그러한 결의안을 채택한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할 것입니다.”

이보다 앞선 지난 7월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북한의 석유 밀수를 차단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중국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중국해역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북한 유조선의 구체적인 이름과 사례를 서한에 명시했습니다.

현재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정제유 수입 한도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고 있는데, 미국 등은 북한이 이미 이 상한선을 넘긴 것은 물론 북한의 주요 유류 획득 통로가 중국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위성사진. 유조선 '리치 유나이티드'호가 북한 송림항으로 정제유를 운반하고 있다.

VOA는 ‘플래닛 랩스’의 위성사진을 분석해 올해 상반기 북한 최대 유류시설이 밀집한 남포 항구에 드나든 유조선 42척을 찾아냈습니다.

앞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유조선 1척이 실을 수 있는 유류 양을 선박에 따라 1만에서 3만 배럴로 추정하고, 남포에 유조선이 정박한 횟수를 토대로 북한에 반입된 정제유 양을 추산한 바 있습니다.

올해 남포에서 포착된 42척의 유조선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북한은 최소 42만에서 최대 126만 배럴의 정제유를 확보했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닐 와츠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위원.

와츠 위원은 “중국의 제재 족쇄가 풀리면서 우리는 훨씬 더 뻔뻔하게 이뤄지는 (유류에 대한) 직접 운송을 보고 있다”며 “이는 분명 대북 정제유 제품에 대한 50만 배럴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와츠 위원] “Because of the loosening of the shackles of sanctions by China, that we're seeing more direct deliveries which are far more brazen, and clearly a violation of the cap on petroleum products to North Korea of 500,000 barrels a year.”

중국 회사가 북한 선박을 ‘대리’ 운영하는 사례도 올해 크게 늘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2016년 채택한 대북 결의 2270호를 통해 북한 선박에 대한 소유와 임대, 운항은 물론 선급 혹은 관련 서비스 제공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북한 유조선 아봉 1호와 북한 화물선 남포 5호 등 4척이 중국 회사에 의해 위탁 운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박 업계에선 ‘대리점’ 형태의 선박 회사들이 실제 소유주를 대신해 제3국에서 선박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박의 실제 선주는 북한에 있지만, 해당 선박이 해외 항구에 입출항하며 발생하는 각종 서류 작업이나 유류 공급, 선박 내 물품 보급 등 관리를 이들 회사가 ‘등록 소유주’ 자격으로 대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도 자국 회사의 이런 운영을 허용해선 안 됩니다.

물론 중국 정부가 해상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제재 위반을 일부 회사의 일탈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나라가 자국 회사나 개인의 제재 위반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볼 때 중국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례로 한국 외교부는 한국 선박이 북한 선박으로 탈바꿈하는 사례가 지난 몇 년간 빈번해지자 지난해 한국 외항선사 보안담당자 등 16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면 계도를 실시했습니다.

또 미국 정부는 북한을 겨냥한 ‘국제 운송 주의보’를 발표하면서 해상에서 이뤄지는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를 고발하고, 관련국과 기관, 개인 등이 불법 행위에 연루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 영국 정부와 함께 정기적으로 해상 보험업계 관계자를 불러모아 회의를 개최하는 등 업계의 적극적인 조치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북제재 위반 장소는 해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최근 VOA는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분석해 북한이 올해 중국에서 약 550만 달러에 달하는 위스키 등 증류주와 와인을 수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2022년 한 해 동안 북한이 기록한 고급 주류 수입액 424만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것입니다.

윌리엄 브라운 미 메릴랜드대 교수

앞서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 메릴랜드대 교수는 VOA에 “과거에는 이런 종류의 상품(고급 주류)은 보통 외국인 관광객이 호텔에서 찾는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이 전혀 없는 만큼 외국인보단 분명 북한 내부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t's interesting because those kinds of products were usually thought of as going to foreign tourists, for the hotels, but there's obviously no foreign tourists. So, we can't say that it's for foreigners. It’s obviously for Koreans.”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06년 채택한 대북 결의 1718호를 통해 북한의 사치품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이어 2016년 채택된 2270호와 2321호를 통해 다시 한 번 대북 사치품 거래 금지 규정을 상기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과 한국, 일본, 유럽연합(EU)은 대북제재 규정에 적용되는 사치품 목록을 정리해 발표했는데, 여기에 위스키와 와인 등 고급 주류가 포함돼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사치품 목록을 작성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주류가 사치품이 아니라는 논리로 북한의 위스키와 와인 수입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소개된 북한 연구원 등의 논문. 북한 연구진 김학봉이 중국 대학 소속으로 나타나 있다.

또 VOA는 7일 전 세계 논문 관련 웹사이트인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게시된 논문과 학술지를 분석해 최소 34명의 북한 출신 연구진이 중국 대학에 소속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1년에 10명 내외의 북한 연구진이 중국에서 포착됐던 전례와 비교할 때 약 3배 급증한 것입니다.

이들이 중국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월급을 수령하거나 생활비와 학비 보조, 장학금을 받고 있다면 이는 유엔 안보리의 북한 해외 노동자 관련 규정에 대한 명백한 위반입니다.

안보리가 지난 2017년 채택한 결의는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2년 뒤인 2019년 12월까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안보리 결의는 중국을 포함한 모든 유엔 회원국이 북한과의 과학 분야 협력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들 연구진의 연구 분야가 이공계인 만큼 해당 조항에 대한 위반 가능성도 큽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의 대북 제재 위반 사례가 포착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VOA는 이들 위반 사례에 대해 중국 정부에 여러 차례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중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 회의를 비롯한 공개적인 자리에서 유엔 안보리의 현 대북제재 체제를 자주 문제삼고 있습니다.

겅솽 유엔주재 중국 부대사는 지난달 25일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최근 정찰위성 발사 문제 논의를 위해 개최한 공개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몇 년 간 북한의 제재 완화를 골자로 한 결의안을 제안한 사실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녹취: 겅솽 부대사]

그러면서 “유감스럽게도 일부 관련국은 이 같은 합리적인 제안을 무시한 채 제재와 압박이라는 마법의 힘에 집착하기로 결정했다”며 사실상 대북제재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과 정반대의 입장을 내놨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